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ㆍ구계원 옮김
문학동네ㆍ440쪽ㆍ1만6,500원
“여자는 쉽게 맘을 주면 안돼”라는 노랫말과 함께 엉덩이를 돌리는 걸그룹은 우리 사회 최대 난제 중 하나다.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요부’라는 불가능한 여성상을 입 밖에 내는 이는 이제 거의 없지만, 발화의 형식과 주체만 바뀌었을 뿐 그 개념은 더 강한 농도로 우리의 뇌에 주입되고 있다.
지난해 타임지 ‘올해의 책 10’에 선정된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스타인이 기성세대 페미니스트이자 10대 딸의 엄마로서 쓴 책이다. ‘핫(hot)’함에 열광하는 사회 속에서 엉덩이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이건 내가 원한 거예요”라고 말하는 딸아이에게 부모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예전에 대학 강연이나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을 할 때 성적 대상화는 외부에서 여성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며 섹슈얼리티는 여자들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임을 기억하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 가지의 구분이 그렇게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5세에서 20세 사이 여성 70명을 만났다. 이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주체적으로 보이지만, 야한 옷을 입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며 주체성과 대상화 사이를 정신 없이 오간다. “눈에 띄고 싶거든요. 남자를 유혹하고 싶은 거죠.” “내숭을 떨지도 않지만 창녀처럼 싼 티는 안 나게 적당히 까진 척하고 사는 게 모든 여자애들의 목표인 것 같아요.”
이런 혼란은 어린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의 미소 앞에 모두가 약자란 점을 감안할 때 핫함은 재력, 학력, 좋은 인격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자의 핫함은 ‘싸구려’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캠퍼스 문화 취재 중 여대생 메건의 이야기를 듣는다. 조신한 여성상을 비웃으며 활발한 성생활을 하던 메건은 2학년 때 타일러라는 남학생을 학생윤리위원회에 성폭행 혐의로 고발했다. “싫다”는 말에도 거듭 성관계를 요구하는 타일러에게 메건은 “피임약을 먹지 않았다”는 말로 회피를 시도한다. 그 뒤에도 메건은 관계 중 가만히 누워 있는 것으로(“어쩌면 제가 섹스를 진짜 못하면 걔가 그만둘지도 모르잖아요”), 같이 샤워하자는 말엔 ‘이제 와서 싫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란 생각으로 응한다.
저자는 메건의 사례에서 현모양처의 늪을 벗어나려는 젊은 여자들이 빠진 또 다른 늪을 본다. 꽉 막히지 않은 여자, 잘 나가는 애, 재미있는 사람이 되면서도 강간 당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메건은 결국 토로한다. “저는 그냥 그 순간을 어떻게든 포장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저자는 이어 미국의 성교육 강사들을 만난다. 소녀의 주목 받고자 하는 욕구와 소년의 성적 욕구에 대해, “안돼”만 반복해온 성교육이 이 사달의 주범이라 본 것이다. 캐리스 데니슨은 똑똑한 여학생들이 자기 무릎에 올려진 손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에 “연습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란 단순명료한 답을 내놓았다. ‘싫었는가 좋았는가, 싫었다면 왜 싫었는가,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생각하도록 촉구하는 데니슨의 교육은 지극히 초보적이지만, 적어도 성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은 질문들’이다.
저자의 화살은 최종적으로 부모들을 향한다. “나 역시 엄마로서 내 아이가 성행위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내 부모님이 우리 3남매를 낳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성행위를 했다는 상상을 할 때와 거의 비등할 정도로 당황스럽다. 하지만 부모의 침묵, 교실에서의 훈계, 미디어의 왜곡이 가져오는 결과는 그보다 훨씬 끔찍하다. 이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이 있어야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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