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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플롯은 싫다" 작가의 고집 담긴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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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플롯은 싫다" 작가의 고집 담긴 단편들

입력
2017.10.12 19:3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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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장편소설 4권, 단편집 2권이라는 놀라운 생산력과 더불어, 하나 같이 독창적이고 문제적인 이야기로 박솔뫼는 순문학계 최고 기대주가 됐다. 박재홍 제공
8년 동안 장편소설 4권, 단편집 2권이라는 놀라운 생산력과 더불어, 하나 같이 독창적이고 문제적인 이야기로 박솔뫼는 순문학계 최고 기대주가 됐다. 박재홍 제공

박솔뫼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ㆍ248쪽ㆍ1만3,000원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라고 하면 스토리다. ‘왕이 죽자 슬픔에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라고 하면 플롯이다.” 영국 소설이론가 에드워드 포스터는 ‘소설의 이해’에서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요컨대 개별 사건들에 내적 질서를 세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플롯이라는 것. 희곡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플롯을 밑천으로 한 ‘이야기 예술’에서 개별 사건이 나열, 해석, 의미부여 될 때 ‘일부의 왜곡’은 필수불가결 할 터다. 설득력 있는 플롯을 위해서는 사건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니까. 잘 읽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 욕망은 태생적이라서 멀게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가깝게는 노먼 프리드먼과 포스터까지, 설득력 있는 플롯의 ‘선택과 집중 사례’를 소개해왔다.

2009년 등단한 박솔뫼의 두 번째 소설집 ‘겨울의 눈빛’은 이런 공식을 분연히 떨치려는 이야기들의 집합이다. 이유가 없지는 않을 터, 표제작 ‘겨울의 눈빛’은 이 설명을 에둘러 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원전 사고가 난 가상의 공간 K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폐허가 된 미래를 살아가는 화자는 한 극장에서 ‘3년 전 부산에서 일어난 어떤 사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다. 허허벌판 모래밭에 ‘부동산 투기자와 부유층과 아시아에서 제일 큰 백화점과 외국 투기자본과 주소지가 서울인 집주인과 체인형 식당과 극장과 카페와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이 들어서고, ‘그 사고’가 터진다. 원전 사고 이후 개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는 다큐멘터리 내용에 대해 화자는 “이건 뭔가 좀 뻔하잖아” 싶을 뿐이다.

“나는 차라리 한국수력원자력공사를 폭파하고 그곳의 간부들을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이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영화를 보고 싶었다.”

‘뻔한 플롯’에 대한 작가의 저항은 ‘단편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서도 이어진다. 추석 연휴를 맞은 화자는 고향인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장 근처를 산책하고,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념해 옛 전남도청 부지에 만든 그 문화전당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구도청 일부를 철거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공사장 간이 화장실을 보고 불현듯 일제강점기, 화장실에서 낳은 아이를 버린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사연을 담은 연극을 떠올린다. 왜 이 연극이 연상되는지 화자 자신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연극을 만든 극단 ‘바람의 여단’은 “역사화되지 않는 역사를 자국에서 실현하고자 텐트를 짊어지고 전국으로 공연을 다녔다.”

소설집 속 9편의 화자는 부산역(‘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 광주의 공사장(‘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극장의 조명실(‘정창희에게’, ‘너무의 극장’) 등을 떠돌며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을 반복한다. 기승전결로 나눠지지 않는, 게다가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퀄트처럼 엮이는 이야기다.

“여전히 나는 공간과 기억을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 멈추는지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 늘 쓰고 싶다. 역사라는 것을 내 안에서 다른 식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도 공원에 앉아 그냥 우는 것이라도 그것이 결국 의미화 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의문이 조금 구체화된 것은 도미야마 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이진경이 발표했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5.18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했는데 그 증언의 내용이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소설집 끝머리에 실린 ‘작가노트’는 박솔뫼의 방향을 말해주고 있다. 게으른 비판, 안일한 도덕성에 기댄 플롯은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 “‘무위’의 성향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문어체와 구어체가 패턴 없이 뒤섞인 서술 스타일”(문학평론가 손정수)의 전위 작가로 분류되지만, 가독성이 아주 낮은 건 아니다. 정영문과 배수아의 소설을 즐겨 찾는 독자라면, 이 젊은 작가의 성장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도 좋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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