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이듬해 숨진 농민 백남기씨와 관련해 국가기관으로서 책임을 인정했다. 사건 발생 23개월, 백씨 사망 13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경찰청은 12일 백씨 유족이 국가와 당시 경찰지휘부인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현장지휘관 신모 총경 등 5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국가 청구인낙서(請求認諾書)’ 제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청구인낙서는 피고 측이 원고 측 청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밝히는 문서다. 국가를 법적으로 대표하는 법무부 사전 동의가 필요한데, 경찰 피소 사건에서 국가가 청구인낙을 받아들인 경우는 그간 없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국가 차원에서 청구인낙을 추진한다는 뜻으로 경찰관 개인이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신 총경과 현장 살수차요원 두 명은 지난달 청구인낙서를 제출했지만 강 전 청장과 구 전 서울경찰청장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청이 살수차 요원들의 청구인낙서 제출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날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회의에서 “당사자들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해 오인할만한 여지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 청장이 유족에게 대면 사과할 기회를 마련, 유족 측 요구를 적극 수렴하는 방안과 함께 향후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백씨 유족 측은 이날 “아직 입장을 밝히기엔 이르다”고 말을 아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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