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삼성은 김응용 감독 영입으로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궜다. 해태를 9번 정상에 올려 놓은 ‘명장’이었지만 지역 라이벌의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김 감독을 ‘모셔간’ 건 오직 우승 숙원을 풀기 위해서였다.
삼성과 두산은 KBO리그 10개 구단 중 대표적으로 ‘원클럽맨’을 지향하는 팀이다. 팀을 가장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적임자는 역시 그 팀 문화를 가장 잘 아는 프랜차이즈 출신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은 김응용 감독에 이어 선동열 감독을 통해 ‘해태의 기술’을 잠시 빌려 쓴 뒤 프랜차이즈 출신인 류중일 감독과 김한수 감독에게 차례로 지휘봉을 맡겼다. 1, 2군 코칭스태프 구성도 마찬가지다.
두산의 프랜차이즈 문화는 더 끈끈하다. 5대 윤동균부터 김인식-김경문-김진욱-송일수-김태형 감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선수-코치 생활을 두산(전신 OB 포함)에서만 한 인사들이다.
반면 LG는 양상문 감독의 후임으로 ‘삼성맨’ 류중일을 택했다. 신임 감독 선임 때마다 프랜차이즈 출신 후보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리더십이 약하다“ 등의 이유로 외면했다. 역대 LG 감독 가운데 LG(전신 MBC 포함)에서만 선수-코치-2군 감독을 거쳐 감독까지 오른 사람은 2000년 이광은 감독이 유일하다. 양 감독의 재계약 불발이 예상되던 올 시즌에야말로 적어도 ‘내부 승격’ 차례인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LG에서 코치 생활만 10년 넘게 한 유지현 코치와 이상훈 피칭아카데미원장, 김정민 배터리코치 등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구본준 LG 구단주의 고집스러운 성향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구본준 구단주의 신임 감독 인선 기준의 첫 번째는 ‘검증된’ 인사다. 감독을 교체할 때마다 구단 수뇌부에게 “올해 계약 기간이 끝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감독을 역임한 외부 인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가 설령 ‘야인’일지라도. 김기태 감독은 그나마 내부 승격이었지만 이미 2군 감독으로 영입할 때부터 감독 발탁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삼성과 두산은 꾸준히 우승을 경험하며 강팀의 반열에 올라선 것과 달리 1994년 이후 23년째 우승이 없는 LG는 여전히 ‘기술자’를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의 ‘야구적인’ 역할이 크지 않다는 것은 야구계의 정설이다. 감독은 얼마나 선수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느냐가 최우선 덕목이다. 한 야구인은 “처음부터 감독을 한 사람이 있나. 오히려 팀이 어려울수록 프랜차이즈 출신이 필요하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끊임없이 외부 인사에게 의지하면 감독이 바뀔 때마다 모든 걸 새로 파악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라고 꼬집었다. 코치 경험은 전무하지만 LG에서 선수로 오래 몸담은 현주엽 감독을 선임한 농구단과는 한 지붕 아래에서 너무 다른 행보다.
‘LG맨’을 꿈꾸는 선수, 코치들의 박탈감도 크다. “이 팀에서 감독을 하려면 팀을 나가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다른 곳에 가서 ‘스펙’을 쌓아야 눈길이라도 한번 줄 것이라는 얘기다. LG는 2005년 서용빈과 김정민을 은퇴시키며 2년간(해외연수 1년ㆍ국내연수 1년) 지도자 수업을 받는 프랜차이즈 지도자 육성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현실은 베테랑들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모자라 지도자로도 LG에서는 꽃을 피울 수 없는 분위기다. LG는 199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며 어느 팀보다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했던 팀이다. 아울러 두터운 팬층을 보유해 출신 감독 선임으로 누릴 효과는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아직 단 한 명의 프랜차이즈 사령탑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씁쓸한 현주소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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