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보호무역 기조 탓 안심 불가
농산물 추가개방 요구도 불안 요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절차가 시작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무역적자 축소를 원하는 미국 입장이 관철될 경우 최대 피해품목으로 자동차가 꼽히고 철강과 정보통신기술(ICT), 농산물 등의 분야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미(對美)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154억9,000만달러로 미국차 수입액(16억8000만달러)의 9배에 달했다. 미국 측이 한미 FTA개정협상에서 지난해 철폐된 대한(對韓) 자동차 관세(2.5%)를 다시 유지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향후 5년 동안 국내 자동차업계(부품 포함)의 피해는 총 89억8,000만달러로 그에 따른 일자리 손실만도 약 2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글로벌판매(약 788만대) 중 미국판매 비중(142만3,000대)이 18.1%에 달하는 현대차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동차와 부품 등의 미국 현지공장 조달률은 53.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한미 FTA 적용을 받는 국내공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자동차관세 2.5%가 부활하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이익 감소폭은 각각 4.1%(2,100억원), 8%(1,44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강과 반도체 등 ICT 분야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간 체결된 협정에 따라 무관세여서,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한미 FTA 협정은 기존 세율 이상으로 관세를 올리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개정협상이 진행되더라도 기존에 무관세였던 철강과 ICT 분야에 관세를 재부과하는 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철강과 ICT 업계는 한미 FTA 개정협상보단 이를 고리로 강화될 미국 보호무역주의 추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실시한 수입산 철강 조사에서 한국산 철강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국내업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대미 수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생산물량을 미국 현지공장으로 돌려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의도적으로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만큼 철강과 ICT 업계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복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미국이 기존세율 이상으로 관세를 올리지 않는다는 한미 FTA 규정을 개정협상을 통해 삭제하고 철강과 ICT 분야에 관세를 부과하는 극단적인 제안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을 통해 철강과 ICT 분야에 각각 4%, 0.01% 수준에서 관세가 부과될 경우 향후 5년간 국내 철강업계 27억8,000만달러, ICT 업계 21억9,0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가전 분야는 이익률이 낮아 관세가 조금만 올라도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농산물 분야에 대한 국내시장 추가개방 요구도 걱정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박사는 “국내 수입 쇠고기 중 미국산 비중이 32%에 달하는 상황에서 관세까지 즉각 철폐하면 국내 쇠고기 시장 판도가 흔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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