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탈ㆍ반대세력 결집 부담에
푸지데몬 수반 ‘정치적 줄타기’
“협상을 제안”…중앙정부 최후통첩
라호이 총리 “노선 명확히 해달라”
독립파 “수용 못할 반역” 분노
스페인 중앙정부에 맞서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이 ‘일방 독립선언’을 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독립투표의 효과를 일시 정지한 후 스페인 정부에 협상을 제안했다. 이로써 카탈루냐와 스페인 정부의 극단적 정면충돌은 일단 피했지만, 독립파와 중앙정부 모두 푸지데몬 수반의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카탈루냐 독립정국에 불확실성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카탈루냐 의회에 출석한 푸지데몬 수반은 10월 1일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카탈루냐를 공화국 형태의 독립국가로 만들 권한이 내게 주어졌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의회에 ‘독립선언의 일시 정지’를 요청했고 수 주간 국제사회의 중재 아래 스페인 정부와의 협상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비록 독립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을 향한 푸지데몬 수반의 어조는 1일 주민투표 직후 “개표가 완료되면 48시간 이내에 독립선언을 하겠다”던 때와는 달리 한결 누그러졌다. “우리(카탈루냐)는 범죄자도 미치광이도 아니며 쿠데타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나머지 스페인’을 향해 이해를 구했다. 유럽연합(EU)을 향해서도 “카탈루냐 문제는 스페인 문제만이 아니라 유럽 문제”라며 중재를 요청했다.
푸지데몬 수반이 이처럼 입장을 돌린 것은 독립투표 후 열흘간 기업들이 카탈루냐에서 이탈하고 독립 반대세력이 결집하는 등 정치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날은 중도파인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시장과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까지 나서 “대화의 가능성을 단절하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푸지데몬 수반 설득에 나섰다. 푸지데몬 수반이 이날 입장 발표를 갑작스레 1시간 연기한 것도 입장문 조율에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카탈루냐의 대화 요청에 중앙정부는 최후 통첩으로 반격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긴급 각료 회의 직후 TV연설을 통해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분리독립을 선언한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밝혔다. 그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으로부터의 응답이 향후 상황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정부는 신중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행동해 가겠다”고 말했다. 라호이 총리의 이런 발언은 스페인 헌법에 규정된 중앙정부 권한에 따라 자치권 몰수 예비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일종의 ‘최후 통첩’이다. 한편 스페인 제1야당 사회당은 이날 헌법의 자치정부 관련 조항 개정을 논의하기로 라호이 총리와 협의했다고 밝혔다. 페드로 산체스 사회당 대표는 “사회당은 카탈루냐가 스페인 일부로 남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독립파 역시 김이 샌 모습이다. 이날 ‘역사적 독립선언’을 기대하며 의회 건물 근처 바르셀로나 개선문 앞에 운집한 독립파 군중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조용히 해산했다. 독립 지지정당이자 소수여당인 ‘찬성을 위해 다함께(JxSi)’를 지지하고 있는 급진 좌파 민중연합후보당(CUP)의 아나 가브리엘 대표는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포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푸지데몬 수반을 비판했고 당내 한 청년 분파는 그의 연설을 “수용할 수 없는 반역”으로 칭했다.
온라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유럽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수도 없고 독립파의 지지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푸지데몬 수반이 “양 진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독립선언 유예’란 정치적 기교를 부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양측을 불만족스럽게 했으며 혼란만 더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은 “푸지데몬 수반이 시간 끌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며 “일방 독립 카드를 손에 쥔 채 스페인 중앙정부에 합법적인 카탈루냐 독립투표를 요구할 것이나 스페인이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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