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은 캐스팅 단계부터 ‘사극 어벤져스’로 불렸다.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을 비롯해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이다윗 등 연기파 배우들을 모두 다 불러 모은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팽팽한 기싸움이 핵심인 영화이지만 함께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배우들은 어떤 호흡을 쌓아갔을까.
이병헌은 “무거운 이야기를 촬영하더라도 촬영 분위기까지 무겁진 않다. 화기애애하고 이야기꾼들이 많아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나만 빼고 대부분 연극배우 출신들이더라. 공통 부분이 많으니까 나는 재밌는 얘기 많이 들으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김윤석도 얘기하는 걸 좋아하더라.(웃음) 영화에서 봤을 때 무섭고 센 느낌들은 못 느꼈다.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함이 있어서 의외였다”라며 웃었다.
극중 최명길(이병헌 분)과 김상헌(김윤석 분)은 ‘살아서 죽을 것인가’와 ‘죽어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 사이에 서있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충신이라는 점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데에서 반대편에 설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여 싸우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병헌은 “시나리오가 매력 있게 다가온 이유는 명길과 상헌이 뜻을 달리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침 없이 두 사람 모두에게 설득 당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건 처음 겪는 감정의 경험이었다. 어떤 작품이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한 사람에게 감정이 실린 상태로 끝나게 되고, 그런 힘이 있어야 관객도 설득당하면서 통쾌함을 비롯해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사람이 얘기를 하면 그 사람에게 이끌린다. 100번을 왔다 갔다 한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났는데 ‘내가 누구의 편이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50대 50으로 누구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게 김상헌 역할이 들어 왔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병헌이 김상헌이 아닌 최명길에게 끌린 이유는 있었다. 최명길은 소신이 굉장히 강한 인물로, 치욕을 감수하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주장한다. 충신이면서 역적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 이병헌은 “‘백성들은 죄가 없다. 백성을 버리지 마소서’라는 대사의 울림이 컸다. 최명길이 대표적으로 하고 싶은 말일 거 같았다. ‘임금이 오랑캐 다리를 기어서 가더라도 백성을 살릴 수 있다면 해야 한다.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말은 나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부분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병헌과 김윤석은 바로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대사를 치고받지만 서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다. 이병헌은 “영화 촬영할 때는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다.(웃음)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왕을 거쳐서 이야기 한다. 그래서 눈빛이나 표정을 볼 수 없고 대사의 떨림과 소리만 느꼈는데도 ‘열의 가득 찬 뜨거운 배우구나’라는 생각은 했다. 둘이 부딪치는 신에서는 ‘자기 자신도 어떤 대사를 하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쏟아내더라.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표정을 보게 됐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표정을 보면서 정말 좋은 배우임을 느꼈다”라며 극찬했다.
영화 전체가 두 사람의 대화로 이뤄진다고 봐도 무방한 가운데, 이병헌은 많고도 중요한 대사들을 어떤 흐름으로 이끌어 갔을까. 그는 “애드리브도 없고 계획도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싸우는 마지막 대사는 촬영 초반부터 감독님께 부탁드렸다. 한 번쯤은 직설적으로 말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나온 것이 ‘무엇이 임금이옵니까’라는 대사다. 계속 멋지게 얘기를 하지만 결국 명길이 하고자 하는 말이 이게 아닌가 싶었다. 그 동안 대사를 할 땐 한 번도 왕을 쳐다보지 않다가 이 대사를 할 때 일어나서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충신이기 때문에 왕의 가슴께만 바라보면서 한다. 최명길이 계획한 건 이 장면 하나 정도다”라고 밝혔다.
이병헌은 평소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배우로 알려졌다. 그는 “질보다 양이다. 그중에 하나 걸리는 거다. 이 영화는 그럴만한 게 없었다. 감독이 정말 똑똑하고 자기가 뭘 해야 되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라 그런 얘기를 할 틈이 없었다. 이 영화만큼 모니터 안 한 영화도 처음이었다. 물론 다른 감독님이 못 미더워서 모니터링한 건 아니다.(웃음) 이번엔 감독님이 오케이라고 하면 오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황동혁 감독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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