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 등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롯해 일부 대기업 일가들이 무단으로 가족 묘지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이전 명령에도 이행강제금만 내면서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어 추가 고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실에 따르면, 최씨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일대에 자신의 부친인 최태민씨와 부인의 합장묘를 관할 지자체장의 허가 없이 조성했다. 특히 최씨는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가족묘지의 면적을 100㎡ 이하, 봉분 높이를 지면으로부터 1㎡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 점도 위반하고, 산지전용 허가 없이 숲을 불법 훼손한 것으로 확인됐다. 처인구청은 이와 관련 최씨 측에 10월 말까지 묘지를 이전하고 임야를 원상 복구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했지만, 최씨 측은 이날까지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일가 역시 현행법이 이행강제금 외에 다른 강제적 수단이 없는 점을 악용해 불법 가족 묘지를 조성ㆍ유지하고 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2005년 양평군청이 부친인 정세영 전 회장의 무허가 불법 묘지 조성 사실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 조치까지 했지만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15년 12월 장사법 위반 혐의로 이미 약식 기소돼 벌금을 냈으며, 이후에도 양평군청이 수 차례 묘지 이장 요구를 했음에도 이행강제금만 납부하고 있다.
오리온ㆍ태광 그룹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담철곤 오리온 그룹 회장은 1991년과 99년 경북 청도군 일대의 농경지에 지자체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자신의 부모 합장묘를 각각 만든 뒤 주차장까지 신설했다. 청도군청은 올 1월 담 회장 측에 부모 묘지를 원상 복구할 것을 통지한 상황이다. 태광그룹 역시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의 묘지가 있는 포항시 선산 일대에 2015년 가족묘지를 신설하며 지자체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황주홍 의원은 “농지나 임야에 불법적으로 묘지를 조성한 주요 인사들이 적발되더라도 연간 최대 1,000만원의 이행강제금만 납부하면 된다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벌금 부과 외에 행정당국이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극적 고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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