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절차를 밟기로 사실상 합의했다고 한다. 때마침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출한 세탁기가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는 판정을 내렸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양국의 긴밀한 협조가 더욱 필요해진 시점에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니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흐름이 더욱 분명해진 만큼 정부는 우리 산업에 피해가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한미 FTA의 현행 유지 입장을 견지했던 정부가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의 압박이 그만큼 거셌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미국은 한미 FTA로 무역불균형이 심해진만큼 대폭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진작부터 주장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압박을 주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재앙으로 여기며 참모들에게 한미 FTA를 폐기할 수도 있다는 ‘미치광이 전술’을 일러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미국의 강경 입장이 분명해진 만큼 우리 대응 또한 보다 분명해져야 한다. 미국에 끌려가다가는 우리 산업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원칙이 필요하다. 가령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에 전체 수출 물량의 3분의 1을 미국으로 수출했는데 만약 협상 개시로 FTA 이전으로 돌아가 관세가 부활하면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의 요구대로 우리 농산물 시장이 더 많이 개방되면 농업 타격이 그만큼 커진다. 협상 절차 착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반발 성명을 낸 것은 농촌의 불안이 그만큼 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ITC의 판정이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이어진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미 세탁기 수출 또한 크게 감소할 게 분명하다.
안 그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이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인 미국에서마저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한국 산업 전반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정부는 곧 경제적 타당성 평가와 공청회, 국회 보고 등 한미 FTA 개정 협상과 관련한 국내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국익을 최대한 지키고 피해는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개정 협상 절차 착수를 정치공세의 빌미를 삼을 게 아니라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대응 책을 함께 고민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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