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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광석, 언론의 윤리

입력
2017.10.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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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언론은 이렇게 다루어도 좋은가. 이는 그의 죽음에 대한 칼럼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다루는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다.

MBC 출신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은 분명 급부상한 김광석 타살 의혹의 촉발제다. 하지만 “기자니까, 김광석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요구, “(타살을 입증할) 99%는 취재했다”는 이 기자의 발언과 달리, ‘김광석’은 진실 규명과 거리가 멀다. 다큐는 부인 서해순씨와 그 오빠를 겨냥하지만, 김광석이 살해됐음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근거는 사실상 없다. ▦사건현장에서 두 종류의 담배꽁초가 발견됐고 ▦김광석이 목에 줄을 여러 번 둘렀다는 서씨 주장과 달리 삭흔은 한 줄뿐이라는 점 등은 타살을 입증하거나 자살을 배제할 증거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륜 등 부부 사이의 문제가 있었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데, 이 역시 자살ㆍ타살 여부를 판가름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진실 규명을 위한 저널리즘 콘텐츠로 본다면 이 다큐는 그저 부족한 게 아니라 문제가 많은 영화다. 서씨 동의 없이 부검소견서를 볼 수 없었다는 점 등 취재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확인해야 할 여러 팩트를 간과했다. 당시 부검에 참여했던 의사, 수사했던 수사관, 사건처리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는 검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 기자의 발언과 서씨에 적대적인 김광석의 가족, 팬들의 발언이다. 타살 입증에 반하는 전문가 해석도 일부 생략됐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김광석 죽음에 대해 타살과 사고사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었음에도 영화에는 자살이 아니라는 이야기만 나왔다. 배 교수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배척했는지는 영화가 아닌 다른 언론 인터뷰를 통해 비로소 이해가 된다. 결정적으로 중요하면서 엇갈리는 팩트들 중 일부만 취사선택한 ‘김광석’은 나태하고 불성실하고 논리도 빈약한 저널리즘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김광석 타살 의혹이 확산된 것은, 김광석의 딸 서연씨가 이미 10여년 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다. 영화 개봉 후 고발뉴스의 보도로 알려졌다. 많은 언론이 서씨와 김광석 유족 사이의 저작권 소송 도중 딸 서연씨가 사망했는데도 서씨가 이를 숨긴 사실을 들어 소송사기 의혹,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언론이 이런 식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타당한가. 언론이 100% 확실한 팩트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기자의 말대로 언론엔 공소시효가 없고,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진실 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고, 그 기준은 공익에 봉사하느냐 여부여야 한다. 권력과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폭로라면 상대적으로 너그러울 수 있지만, 피해를 낳을 수 있는 보도라면 엄격한 팩트 확인이 필요하다. 권력자나 공인 아닌 특정 개인이 그 피해자가 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마음 속으로 살인자라고 낙인찍은 서해순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딸의 죽음을 가족에게 숨기고, 남편 사망에 대한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서씨의 행동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하지만 서씨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구석이 있다고 해서 그를 살인자로 몰아붙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대중의 심리에 기대 이를 조장하는 언론은 명백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김광석’을 보면서 나는 이 기자에게 감탄한 면이 있다. 20년이나 진실 규명의 의지를 버리지 않은 열정과, 서씨 인터뷰 테이프 사본을 김광석 가족에게 맡길 정도로 철저한 기록에 대한 천착이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팩트 확인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의 천착은 타살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됐다. 서씨의 살해 혐의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그래도 사회적 혐의는 벗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이 기자는 서씨의 피해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아님 말고’식의 폭로는 언론의 몫이 아니다. 여전히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의 윤리다.

김희원 기획취재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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