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멕시코 지진에 이어 인도네시아 발리의 아궁 화산도 폭발 조짐을 보인다는 소식에 심리적으로는 현지인만큼이나 불안에 떨었던 것 같다. 발리관광청은 유명 관광지인 꾸따ㆍ스미냑 지역은 아궁 화산에서 70km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발리의 주요 관광지가 큰 피해를 입을 것처럼 자극적인 보도가 난무했다. 재난상황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해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된 건 다행이지만, 자극적인 추측 보도나 무분별한 시청각 자료로 불안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2010년 지진 위험에 가장 취약한 도시 20곳을 발표했는데, 네팔의 카트만두와 터키의 이스탄불이 각각 1ㆍ2위에 꼽혔다. 인도(델리, 뭄바이), 인도네시아(자카르타, 반둥), 터키(이스탄불, 이즈미르), 에콰도르(키토, 과야킬), 멕시코(멕시코시티, 티후아나)는 각각 2개 도시가 순위에 올랐다.
'불의 고리'는 태평양 판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판, 북미 판, 남미 판, 호주 판 등의 지각 판이 ‘U’자를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만나는 ‘환태평양 조산대’의 다른 이름으로 지구상에서 지각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전 세계 활화산과 휴화산의 75%가 이 지역에 몰려 있으며 지진의 80∼90%도 이곳에서 발생한다. 무려 452개의 화산이 ‘불의 고리’에 몰려있다.
국지적인 폭발은 지구 표면을 이루는 판들의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사건(accident)이다. '불의 고리'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려 3,730만명이다. 그들은 언제 모든 것을 집어 삼킬지 모르는 재앙을 일상으로 끌어안은 채 불의 신을 숭배하며 화합하기도 하고, 지구의 분노에 응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 현장은 최고의 여행 상품이 되기도 한다. ‘불의 고리’ 안이든 밖이든,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한 배를 탄 처지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재난', 보다 나은 삶과 여유를 찾기 위한 '여행', 이 상극 같은 두 단어를 동시에 의연하게 살아내는 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인도네시아 화산 재앙 뒤에 따라 온 돈벌이
언제 화산이 터질지, 땅이 흔들릴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여행을 가도 괜찮은 걸까?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위치한 메라피 화산에 다녀왔다. 인구 150만의 도시 족자카르타에서 북쪽으로 약 30km 거리에 위치한 산이다. 메라피 화산은 1548년부터 68회 분화한 기록이 있다. 가장 최근은 2010년 10월 26일이었다. 첫 폭발 이래 수 차례 대폭발을 일으켜 320명 이상이 숨지고 3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대기와 경작지 및 하천이 화산재에 오염돼 한 동안 관광객의 발길도 끊겼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메라피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브로모 산에서도 화산이 터졌다. 최고 경계 수준인 적색경보가 발령되고 분화구 반경 3km까지 접근이 금지된 상황에서 두 차례나 폭발해 잿빛 구름과 돌덩어리를 600m 상공으로 뿜어냈다.
다행히 브로모 화산 폭발은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대신 화산활동이 잠잠해지자 그 흔적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대의 호텔에선 방을 구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관광객을 말에 태워 분화구가 보이는 곳까지 안내해주는 마부들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사람들은 분화구에 '불의 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을 믿는다. 운해 속에서 쉴 새 없이 연기가 피어 오르는 신비로운 장관을 보려고 지금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메라피와 브로모 화산 일대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트레킹 관광지로 변모했다.
사륜구동 차량으로 끝없이 펼쳐진 검은 용암평원을 달렸다. 줄기가 가느다랗지만 아직도 평원 중간중간 화산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용암이 잔인하게 핥고 간 참상을 전시한 마을과 동굴도 방문했다. 재난을 일상으로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의연한 모습과 적응력도 놀라웠지만, 아직도 폭발 위험의 여지가 있는 활화산을 찾은 바글바글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더 큰 볼거리였다. 며칠 전까지도 살려만 달라며 신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려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을 텐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이 곳, 인간은 자연을 두려워하긴 하는 걸까?
활화산이 주요 관광 수입원인 바누아투(Vanuatu)
호주에서는 약 4시간, 피지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바누아투는 호주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남태평양의 대표적인 여행지 중 하나다. 성인식과 제사의 의미로 번지점프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며(4~6월 사이 남쪽의 펜테코스트섬에서 번지점프 성인식이 열린다), 흑인 중에 유일하게 금발의 인종이 사는 섬이다.
바누아투의 랜드마크인 타나(Tanna)섬의 야수르 산은 10분마다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이다. 2016년 95만명의 바누아투 관광객 중 26%는 붉고 뜨거운 용암이 터져 나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화산을 찾았다고 한다. 가이드에게 마그마가 튀어 오르면 분명히 다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하느냐 물었더니, "무서우면 내려가든지, 아니면 알아서 피하면 된다"고 한다. 우문현답이다. 그렇지,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야수르 산에 도착하면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화산재가 덮인 언덕을 질주한다. 분화구까지는 차에서 내려 다시 45분 정도를 걸어 올라야 한다. 시커먼 밤에 출렁이는 검은 파도를 뒤로하고 진한 주황색 용암을 토하는 야수르 산은 젊고 매력적인 악녀의 입술같이 저돌적이고 황홀하다. 그래서일까 한 해에 5명 정도는, 특히 사진작가들이 욕심을 부려 안전규정을 어기고 분화구 가까이까지 갔다가 악녀의 재물이 되고 만다고 한다.
화산에 사는 것이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화산이 분출해낸 칼륨ㆍ인 같은 물질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식물이 잘 자란다. 그래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활화산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또한 화산은 신비로운 매력을 품고 있다. 유황온천, 머드풀, 불로우 홀, 해구, 용암 평원 등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자연자원만으로도 대대손손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화산암을 이용한 석재, 황ㆍ붕산 등을 비롯한 금속광산도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그들에게 화산은 이제 생활이고 신(神)이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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