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 큰형 집을 찾은 자영업자 A씨는 차례를 끝내고 음복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겪은 아찔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3년 전 추석 당일 A씨는 차례상에 올린 술을 한 잔, 아침식사를 하면서 또 한 잔을 마셨습니다. 이후 형제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안문제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자 자리를 박차고 5㎞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 근처에서 접촉사고를 냈고 혈중알코올 농도가 0.156%가 나와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잘못은 했지만 추석 연휴였고, 음복 정도야 괜찮겠다 싶어 A씨는 법원에 면허취소 처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법원으로부터 꾸중만 들어야 했습니다. 법원은 조금이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음주운전의 경각심을 지적한 후 A씨의 소를 기각했습니다.
주차장서 살짝ㆍ30㎝만 이동해도 철퇴
음주운전을 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기소된 정모(52)씨. 술을 마신 상태에서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포터 화물차에 시동을 켰고, 아주 살짝 후진했습니다. 도로가 아니라 주차장이었지만 법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정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습니다. 정씨는 이전에도 음주운전으로 2차례 벌금, 1차례 징역형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술에 취했지만 차량을 불과 30㎝만 이동시킨 이모(55)씨는 어떨까요. 운전을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차로 30㎝를 운전했다는 것은, 시동을 켜고 기어를 주행에 둔 뒤 가속페달을 밟지 않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만 뗀 정도입니다. 이씨는 법정에서 “차를 잘못 조작해 차 흔들림만이 있었을 뿐 차를 운전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씨는 ‘음악을 틀려고 하다가 실수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량에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단속 경찰은 이씨 차량이 30㎝ 움직였다고 증언했습니다. 법원은 경찰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고, 이씨가 술에 취해 시동을 켜고 운전을 시도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30㎝ 운전한 이씨는 결국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한겨울에 술을 마신 뒤 차에 타 히터를 틀기 위해 시동만 켜놓고 앉아 있었던 B씨. 그런데 차가 살짝 움직였습니다.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가 나왔습니다. B씨는 술에 취해 자기 위해 차를 탔고, 발을 뒤척이던 중 차가 저절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심과 2심 결과는 달랐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석에 앉아 기어만 조작해도 법정에 설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교통사고 변호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시동을 켜고 운전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적발될 경우 자신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블랙박스 등 증거자료로 확실히 소명되지 않으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음주측정 거부하면 음주운전과 같은 형벌
설마 기분이 나쁘다고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분들은 없겠죠. 경찰은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C씨를 지구대로 임의동행 했습니다. C씨에겐 술 냄새가 났고, 말도 어눌했습니다. 경찰이 C씨를 발견했을 땐 주차를 다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C씨는 ‘내가 운전하는 걸 봤느냐. 하지 않았다’며 음주측정을 거부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C씨에게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그는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음주운전을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음주측정 불응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음주측정 요구 당시 운전자가 반드시 음주운전죄로 처벌되는 음주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0.05% 이상의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음주측정 요구 당시 개별 운전자의 외관ㆍ태도ㆍ운전 행태 등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즐거운 연휴에 기분 좋게 한 잔 기울였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법은 음주운전에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