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자살은 면책사유” 주장하며 지급 거부
법원 “단순 추락사 배제 못해” 유족 손 들어줘
술을 마시고 고층 계단에서 추락사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던 보험사와 유족간의 다툼에서 법원이 유족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 설민수)는 추락사한 이모씨의 유족이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금 3억원을 지급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6월 오전 서울 서초구 한 건물 6층 외부 비상계단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씨 사망 직후 추락이 자살이었는지 여부를 두고 보험사와 유족간 갈등이 생겼다.
이씨는 사망 전날 회사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은 직후 새벽 시간에 다시 그 식당을 찾아가 술을 마신 뒤 건물 7층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가던 중 6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이때 6층 난간에서 이씨 DNA가 묻은 동그랗게 묶인 노끈이 발견된 점, 형과 상속재산 처분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던 점을 들어 보험사 측은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보험계약에서 정한 사고에 해당하지 않고 자살은 보험계약 면책사유”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 면책사유로 규정하는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기 위해선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며 설명했다. 자살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의 얼굴이나 목에 특별한 외상이 없었고, 사고 당시 만취 상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신장이 172㎝인 이씨가 높이 1m를 조금 넘는 철제 난간에 기댔다가 실수로 추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사고 전날 딸과 통화하면서 충남 태안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은 전력이 없는 점, 가족간 불화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점, 유서를 남기지 않은 점을 참작해 보험사가 보험금 3억원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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