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아르곤’의 6개월 계약직 기자 이연화(천우희)는 동기들에게도, 선배들에게도 눈총을 받는 미운 오리 새끼다. 파업에 참가한 언론인 15명이 해고된 후 생긴 빈 자리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HBC 탐사보도팀 아르곤의 앵커 김백진(김주혁)은 이연화에게 “너 파업 때 왜 여기를 지원했냐”며 그의 의중을 떠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풀이 죽은 이연화는 머뭇거리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한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요. 기사가 쓰고 싶어서요.”
‘아르곤’은 공영방송 MBC의 총파업 사태에 자주 빗대어 거론됐다. 극중 설정이 2012년 MBC 파업 이후 부당전보, 언론인 해고, 빈 자리에 채워진 계약직 언론인 등 실제 상황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아르곤’을 연출한 이윤정 PD는 “MBC가 연상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지만, 현실과 비슷한 설정 때문에 ‘시용기자(MBC 계약직 기자)를 미화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천우희는 그럴수록 캐릭터 자체에 집중했다. 29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솔직히 어떤 오해를 살까 싶어 연기하기 조심스러웠다”며 “특정 대상이 대입되지 않도록 대본의 캐릭터 자체에만 집중하려 했는데,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한 천우희는 영화 ‘마더’(2009), ‘써니’(2011), ‘한공주’(2014), ‘곡성’(2016) 등을 통해 강렬한 연기를 보여왔다. ‘마더’에서는 당돌한 여고생으로 분해 배우 진구와 베드신을 선보였고 ‘써니’에서는 본드를 흡입한 불량학생으로 열연했다. 그는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13관왕을 차지하면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무당 무명으로 열연한 ‘곡성’이 크게 흥행하면서 충무로 스타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아르곤’은 천우희 드라마 진출작이다. 그는 “매번 강한 역할만 하다 보니, 현실적이고 힘을 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극중 ‘뉴스는 믿는 것이 아니고 판단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에 우리 드라마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잘 녹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린 종종 확실한 정보인지도 모르고 가짜뉴스를 퍼 나르잖아요. 예전엔 기사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지만, 이제 저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어요.”
극중 이연화는 상사에게 깨지고, 보고에 대한 압박도 받아가면서 성장한다. 그는 “눈칫밥 먹던 이연화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며 “주변 지인들과 부모님이 ‘네가 직장 생활하면 꼭 저럴 것 같다’며 좋아해주더라”고 말했다. 특히 “조용하지만 강단 있고, 힘들지만 내색 안하고 버티는” 이연화의 성격이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아 더욱 애착이 갔다고 했다.
천우희는 “욕심이 많은 배우”다. “모든 장르와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캐릭터를 연구할 때도 자신이 상상한 모습이 그대로 구현됐으면 하는 바람에 자기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다. 공감되지 않거나, 흥미가 떨어지는 대사가 있으면 연기에 고스란히 드러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그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다른 선배들은 본인이 공감되지 않는 장면도 기술적으로 매끄럽게 소화하는데, 저는 몰입이 안 돼서 그런지 곧바로 연기에 드러나거든요.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여러 선배들이 제가 가진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기술이야 오래 하면 자연스럽게 느는 것이지만, 진정성은 억지로 만들 수 없다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죠.”
천우희는 드라마를 통해 “나 스스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연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어리숙한 사회초년생 연기에 시청자가 신선함을 느끼길 바란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통해 다시 충무로에 복귀하지만, 조만간 안방극장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발랄한 연기를 선보이는 모습도 꿈꾼다. 그는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대본이 많이 들어온다. 기회가 되면 꼭 해볼 것”이라며 “먼저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웃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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