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창 가는 길을 연 렴대옥(18)-김주식(25ㆍ이상 대성산 체육단)은 각각 8세, 9세 때 피겨스케이팅에 입문했다. 둘 모두 싱글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5년 대성산 체육단 피겨팀 김현석 감독 밑에서 페어 선수로 호흡을 맞췄다.
짝을 이룬 뒤 주로 피겨스케이팅 B급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8월 필리핀 아시아 오픈 대회에서 우승했고 3개월 뒤 이탈리아 메라노컵 대회에서는 페어에 출전한 2개 팀 중 한 팀인 인도 조가 기권해 경쟁 없이 1위에 올랐다.
렴대옥-김주식 조가 주목을 받은 것은 올해 2월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때다. 둘은 총점 177.40점으로 중국 장하오-위샤오위(223.08점), 중국 펑청-진양(197.06점)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이 수확한 유일한 메달이었다.
당시 렴대옥-김주식 조의 연기를 현장에서 지켜 본 한국 빙상 관계자는 “북한 팀 기량이 기술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 모두 크게 발전한 모습”이라며 “변화하는 규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 새롭게 발전하고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 팀 관계자 역시 “우리 선수들 연기를 잘하지 않느냐”라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 렴대옥-김주식 조는 꾸준한 기량 상승으로 네벨혼 트로피 대회를 통해 평창행 티켓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60.19점을 얻고 프리스케이팅에서 자신들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역대 최고점인 119.90점을 받았다. 총점 180.09점 또한 자신들의 역대 최고점이다.
피겨스케이팅 페어는 북한의 동계스포츠 전략 종목이다. 싱글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훈련량과 호흡 만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빙상장을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할 만큼 많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계스포츠 저변이 부족한 북한은 일찌감치 피겨 페어를 국제 대회에서 메달 획득이 가능한 종목이라고 판단해 선수 육성에 힘썼다. 이런 배경에서 렴대옥-김주식은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두 차례 페어 종목 세계 챔피언에 오른 메건 두하멜 부부의 지도를 받아 훈련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역대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에서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땄는데 모두 페어에서 건졌다. 렴대옥-김주식 조에 앞서 1986년 삿포로 대회에서 남혜영-김혁 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서는 리지향-태원혁 조가 동메달을 땄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에서는 아이들이 다니는 피겨 청소년 클럽이 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다”며 “여기서 발굴된 유능한 아이들이 (대성산)체육단에 들어가 전문교육을 받게 된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을 대표해서 출전한 김수연(인천논현고)-김형태(명지대) 남매는 16개 출전 팀 가운데 15위에 그쳐 평창올림픽 출전권 확보에 실패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40.75점을 받은 김수연-김형태 조는 프리스케이팅에서 88.25점(TES 48.58점ㆍPCS 41.67점ㆍ감점 2)을 따내 총점 129.00점으로 자신들의 ISU 공인 최고점인 140.98점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페어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한국은 팀 이벤트(단체전) 출전 국가들이 사용하고 남은 추가정원 티켓(10장)을 활용해 ‘평창행’을 타진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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