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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상 시나리오 ‘3분’

입력
2017.10.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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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이라니 너무 하잖아. 3분 뒤에 이 도시로 핵폭탄이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다. 휴대폰 버튼을 눌러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중이다.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폰을 움켜잡는 바람에 통신이 두절된 것일까. 뉴스에서는 생존배낭 대피요령 방사능이라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은 접속이 가능하다. 포털 뉴스마다 공격지점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 예측하는 댓글들이 폭주한다.

1.

어디에 있니?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내기’를 누르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화 협상 동결 폐기 억지 봉쇄를 떠들던 잘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깊은 지하의 콘크리트 벙커 안에서 여전히 예측과 전략을 논의하고 있겠지. 방사능수치가 안전한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그 속에서 꼼짝도 안 하겠지. 여름 내내 빗물이 들이쳐 벽지에 곰팡이 얼룩이 생긴 방 안에 앉아 나는 몸을 떨며 분노한다. 다 날아가 버려. 이 도시에 있는 더러운 것들, 땅 밑으로 땅 위로 흐르고 있는 악취 나는 검푸른 구정물들, 매일매일 트럭에 산더미처럼 실어도 또 나오는 쓰레기들. 번쩍번쩍 빛나고 반들반들 매끄러워서 썩지도 않는 것들, 얼마나 독한 화학약품이 들어가 있는지 웬만한 불꽃으로는 태울 수도 없는 것들, 이번 기회에 모두 숯덩이가 돼라. 사람이 죽든 말든 돈이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저질들, 무능력하고 남다르다고 사람 차별하고 무시하던 쓰레기들, 너희도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지. 잠깐만. 그들이라면 이미 외국으로 피신했을 확률이 높잖아. 평범한 사람들만 이렇게 죽다니 억울하다.

2.

살아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 건물의 주차장은 지하가 아니니 아무 소용도 없다. 길 건너편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갈까. 가는 길에 더 고통스럽게 죽을지도 몰라. 집안에 있는 모든 이불을 모아서, 집의 정중앙, 모든 창문으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지점에 쌓고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떨까.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그러다가 이불을 떠메고 옮기다가 죽을 수도 있다. 아름답지 못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트에서 늘 구경만 하던, 값비싼 포도주라도 사다 놓을 것을. 유리잔에 담긴 진홍빛 액체를 마시며 우아하게 생을 마무리할 것을. 휴대폰을 노려본다. 아들에게서는 여전히 아무 소식도 없다.

3.

초침이 12라는 숫자를 지나는 순간 마음은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고요해진다. 체념일까. 슬픔일까. 죽기 1분 전이다. 시계 바늘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남겨야지. SNS에 접속한다. 내가 사라지면 많은 이들이 슬퍼하겠지. 물론 기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미 죽었으니 가엾어 할지도 모른다. 그게 더 싫은데. 어쨌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혐오하고 저주하고 조롱하고 비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모든 에너지가 모여서 핵폭탄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남은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나밖에 몰랐고, 나의 슬픔과 기쁨만 중요했다. 나는 뱀처럼 교활해도 남들은 양처럼 무구하기를 바랐다.’ 이런 글을 남겨서 무엇 하리. 나는 사라지는데. 그래도 남기고 싶어 ‘게시’ 버튼을 누른다. 잠시 기다려본다. 아무 반응도 없다. 뭐지. 타임라인에 비슷한 내용의 수많은 글들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그렇다. 나만 죽는 게 아니었다. 결국 수많은 죽음들 속에 나의 죽음이 묻히는구나. 나만 죽는 거라면 관심 좀 받았을 텐데. 그 순간 창밖에 섬광이 비친다. 번쩍. 평생 그토록 바라던 스포트라이트처럼.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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