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란에 시댁 가는 괴로움, 차례 지내는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글이 눈에 띈다. 명절에는 부부 각자 자기 집으로 가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얼굴도 보지 못한 시조부모 제사 지내는 문화 바꾸자는 얘기도 나왔다. 여러 사람이 중복 청원한 주제로는 가족 호칭의 남녀 차별 문제가 있다.
▦ 자신을 ‘20대 후반 여성’이라고 밝힌 한 청원자는 ‘여성 차별적 시댁 호칭 문제’라는 글에서 “결혼한 여성들을 시댁의 종과 같은 위치로 만드는 시댁 호칭 문제가 개선되기를 청원”한다며 차별적 호칭의 사례를 몇 가지 들었다. “부인의 남동생은 처남, 여동생은 처제로 낮추고 남편의 남동생은 도련님, 여동생은 아가씨로 높여 부릅니다. 도련님, 아가씨는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으로 여자는 시댁의 종과 같다는 암묵적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올케는 오라비의 계집에서 유래한 호칭으로 하대하는 표현입니다. 시댁의 댁은 '댁'은 남의 집이나 가정을 높여 이르는 말, 처가의 '가'는 같은 호적에 들어 있는 친족 집단을 이르는 말로써 남편의 가족만을 높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 친족 호칭이 한국만큼 세분돼 있고 그것도 남존여비의 위계를 뚜렷이 반영한 경우는 세계에서도 드물다. 영어에서 부인이나 남편의 형제는 ‘sister-in-law’ ‘brother-in-law’ 두 가지다. 생활 호칭은 그냥 이름이다. 한국말 못지 않게 경어 표현이 발달한 일본의 경우도 시숙이나 처남을 고쥬토(小舅), 시누이나 처형은 고쥬토메(小姑)라고 하지만 역시 일반 호칭은 “○○씨”라고 이름을 부른다.
▦ 국립국어원이 “가정에 대한 의식 변화”에 따라 20년 만인 2012년 개정한 ‘표준언어예절’ 책자에서도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호칭을 추천한다. 최근 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페이지에서 누군가 이를 지적하며 바꿀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우리 관습상 굳어진 것을 안내“한다는 의미라며 ”임의로 호칭을 만들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답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호칭은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법으로 정한 건 아니니 청와대가 나설 일은 아니다. ‘표준언어예절’을 내며 “생활에 필요한 올바른 언어 예절을 아우른다”고 자부했던 국어원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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