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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21년 후에도 또 '무릎 꿇은 부모'를 볼 건가요?

입력
2017.09.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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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썩이게 한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의 부모들이 반대하는 지역 주민 앞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인데요.

장애인 시설을 지을 때마다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은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정말 장애인 시설은 동네 분위기를 흐리는 혐오시설일까요? 또,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가 카드뉴스로 정리했습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고가혜 인턴기자

혹시 이 사진 기억 하시나요?

지난 5일, 서울 강서구에서 열린 주민토론회 도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들은 다름아닌 장애아동의 부모.

서울시 교육청이 강서구에 특수학교 신설계획을 발표하자 강서구 주민들이 이를 반대하며 나섰습니다.

"강서구에 특수학교는 안됩니다. 그 자리에는 한방병원을 설립해야 합니다."

반면 특수학교마다 정원이 부족해 1시간 넘게 통학을 해야 하는 장애학생과 그 부모는 학교가 간절했습니다.

"저희를 때리셔도 좋습니다. 제발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지어주세요."

하지만 그들을 향해 돌아온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저거 다 연기야."

"저 사람들 다 강서구 주민 맞는지 조사해."

"장애인이 많으면 동네 분위기가 안 좋아져."

"집값이 떨어져선 안돼."

현장에는 고성이 오갔고 결국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채 주민 회의는 결렬됐습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무릎을 꿇고, 학교를 구걸해야 하는 모습에

누리꾼은 "장애학교가 혐오시설이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사진과 영상이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지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최근 이낙연 총리는 이 사진을 언급하며 “도대체 우리 사회의 무엇이 장애 아동과 그 부모를 이 지경까지 몰아넣느냐”며 호소하기도 했는데요.

그 결과, 서울시교육청은 아직 특수학교가 없는 8개 구를 포함해 25개 모든 구에 특수학교를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무릎까지 꿇은 부모들의 절절한 모습이 여론을 움직여 이뤄낸 쾌거였습니다.

하지만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여전히 한숨을 내쉽니다. 2015년에도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지만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무릎 호소를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해줘 감사하지만, 또 다시 주민 반대로 좌절을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요?” - 자폐성 1급 아들을 둔 김남연(51)씨

지역 주민들은 특수학교가 설립되면 집값이 떨어지고 동네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특수학교 설립이 주변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특수학교 인접지역(1km이내)과 비인접지역(1~2km)간의 땅값과 아파트 가격 등은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인접지역의 가격이 오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에도 장애인과 특수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이라고 상황이 달랐을까요? 1996년 한겨레신문의 기사입니다 (출처 : 한겨레신문 1996년 6월 2자)

‘두 번 우는 장애 어린이들’이라는 제목의 기사. 어쩐지 오늘날 강서구 특수학교를 위한 ‘무릎 호소’ 장면이 겹쳐 보입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21년 전 서울시교육청은 관악구에 특수학교인 ‘정문학교’를 설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관악구 주민들은 교육청 앞에서 반대 시위를 하며 완강하게 설립을 거부했고

정문학교에 입학예정이었던 90여 명의 학생들은 구로구 정진학교에 급조된 임시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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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동네 땅값이 떨어질 까봐 반발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 1996년 당시 정진학교 교감 박성래

1996년 3월 개교 예정이었던 정문학교는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개교가 미뤄지다가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1년 후, 이 지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특수학교가 지역 분위기를 흐렸을까요?

정문학교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학교 담장에 페인트 칠을 하자 지역 주민들도 두 손을 걷어 붙이고 동참합니다.

7명의 학생들이 만들어낸 실로폰 앙상블, 동네 어르신들은 아름다운 하모니에 빠져듭니다.

이들은 매년 인근 지역 행사 무대에 서며 장애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혐오시설로 낙인 찍혔던 정문학교는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주민들은 학생들에게도 마음을 열었습니다.

“처음 마주쳤을 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막상 만나보니 순수한 동생들이더라고요.” - 인근 슈퍼마켓 종업원 민모(29)씨

실제 집값에도 큰 영향이 없었습니다. 학교 설립을 '결사 반대'했던 관악구의 한 주민은 21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서울에서 손에 꼽는 달동네였는데, 학교가 들어선 뒤 집값 떨어지지도 않았고

길 건너에는 신축 아파트도 생겼어요. 잘 된 일이죠.”- 주민 박모(62)씨

다시 돌아와서 2017년 9월, 사실 맨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 어머니의 아이는 20살, 이미 졸업반 학생입니다.

빨라도 수년 뒤 개교할 학교를 위해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입장이었죠.

‘선배’ 장애아동 부모인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곧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낼 부모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 상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 키운 우리가 나선거죠.”

후배 부모는 같은 고초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선배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이 잘 전해져 그 다음 21년 뒤엔,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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