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쿠바 주재 자국 대사관 직원을 필수 인력만 남기고 철수하기로 했다. 쿠바 주재 미국 외교관과 가족들이 뇌 손상, 청력 상실 등의 괴증상을 호소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쿠바 정부가 미국 대사관에 ‘음파 공격’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는 쿠바 수도 아바나 미국 대사관에 주재하는 자국 대사관 직원 60%을 철수하고 외교관 가족도 귀국시킨다고 밝혔다. 국무부에 따르면 쿠바 내 미국 시민을 위한 영사업무는 계속되지만, 쿠바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미국 비자 발급 업무는 중단된다.
국무부는 또 “미국 외교관에 대한 공격이 있었던 이상 미국시민의 쿠바 여행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여행 경보를 발령하고 미국인의 쿠바 여행 자제를 당부하기로 했다. AP통신과 인터뷰한 한 미국 고위 관료는 워싱턴에 주재하는 쿠바 외교관의 철수 요구도 고려됐지만 현재는 확실히 결정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한 국무부 고위 관료에 따르면 쿠바 아바나 대사관에 주재한 미국 대사관 직원과 가족 등 21명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뇌 손상, 청력 손실 등의 괴증상에 시달려 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쿠바측에서 일종의 음파 장비를 활용해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격은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지난 2월부터 약 7개월간 쿠바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확실한 조사를 약속하며 미 연방수사국(FBI) 직원의 입국도 허가했다. 그러나 미국과 쿠바 정부 모두 공격에 사용된 무기 등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피해자 직원 개개인의 증상도 저마다 달라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정부는 ‘음파공격’ 연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은 지난 26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쿠바는 미국 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 연루되지 않았으며, 미국이 사건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틸러슨 장관은 “공격에 연루됐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쿠바는 미국 외교관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로 이번 철수 결정을 내렸다고 국무부는 설명했다. CNN방송은 “조사가 지지부진하자 미국 관료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 국무부의 쿠바 대사관 직원 철수 결정에는 지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진행된 양국의 ‘화해 무드’에 불만을 품은 공화당 정부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미국 언론은 관측하고 있다. 특히 쿠바 카스트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쿠바 정권을 비판하고 지난 정부의 쿠바 협상도 불충분하다고 주장해 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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