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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동남아] 커피 문화의 천국, 동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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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동남아] 커피 문화의 천국, 동남아시아

입력
2017.09.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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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및 다국적 커피 프랜차이즈 증가 속 소비 시장으로도 각광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 일하는 태국 치앙마이의 '리스트레토'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정환 이사 제공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 일하는 태국 치앙마이의 '리스트레토'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정환 이사 제공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둔 지난 7월 초 태국 북부의 고도(古都) 치앙마이. 태국 제2의 도시이자 휴양지로도 각광받는 치앙마이 중심가의 한 카페 앞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서울의 가로수길을 연상시키는 님만해민 지역에 자리잡은 ‘리스트레토(Ristr8to)’ 카페를 찾은 관광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이다. 태국 출신인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 직접 제조한 수준 높은 커피를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리스트레토 카페는 여행 안내 책자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명소다. 이를 증명하듯 라테류의 커피 등을 음미한 방문객들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지구촌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동남아시아 커피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동남아라고 하면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육지와 바다에 풍부히 매장된 고무, 주석, 천연가스 등은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커피 역시 동남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자원이다. 꼭 커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커피 전문점 메뉴판에서 만델링, 토라자, 가요 마운틴 등을 한 번쯤 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의 명칭이 개발자가 즐겨 마시던 인도네시아 자바 커피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지낸 한국인들이 현지산 커피를 가족 및 친지, 친구들의 선물로 추천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세계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동남아에서는 커피가 약 3,810만백(bagㆍ1bag=60㎏)이 생산됐다. 이는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대륙의 커피 생산량(4,480만백)의 85%, 전세계 커피 생산량(1억5,390백) 중 25%에 육박하는 수치다.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가 속한 아프리카의 생산량 1,640만백을 훌쩍 뛰어넘는 동남아 커피의 선두 주자는 단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다. 지난해 각각 커피 2,550만백, 1,150만백을 생산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커피 생산대국 2위와 3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 나라와 격차는 크지만 라오스(50만백)와 태국(44만백), 필리핀(20만백)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 밖에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에서도 소량이지만 꾸준히 커피가 생산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각각 커피 생산량의 90%, 60% 가량을 수출하는 가운데 대다수 커피 농장이 소규모 플랜테이션 형태로 운영돼 온 점이 특징이다. 품종별로는 아라비카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재배 조건이 덜 까다로운 로부스타가 역내 생산량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치앙마이의 카페 '더리스트레토' 에서 예쁜 장식과 함께 제공된 카페라테. 방정환 이사 제공
태국 치앙마이의 카페 '더리스트레토' 에서 예쁜 장식과 함께 제공된 카페라테. 방정환 이사 제공

동남아 커피 재배의 시원은 17세기말 인도네시아로 거슬러 올라 간다. 16세기 초 이래 오스만 투르크가 점령하고 있던 아프리카 예멘에서 커피 묘목 몇 그루를 빼돌리는데 성공한 네덜란드는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주목했다. 그리고 상업적 재배를 목적으로 자바 섬의 바타비아(네덜란드 통치 시절 자카르타 명칭)에 처음 커피 나무를 들여 왔다. 이후 자바 섬 곳곳으로 확산된 커피 재배는 네덜란드에 막대한 경제적 부를 안겨 줬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장기 보관을 위해 찬물로 커피를 내려 마셨던 것이 오늘날 더치 커피의 기원이라는 얘기도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커피 문화는 동남아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높은 기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둘러 앉아 플라스틱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와 부드러운 연유를 섞어 마시는 연유커피는 베트남을 상징하는 커피 문화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 등지에는 달군 숯을 연유 커피에 넣어 마시는 독특한 식문화도 남아 있다. 또 자바섬 서부 반둥에는 시장통 한 켠에서 80년 넘게 수작업으로 커피를 볶아온 로스팅숍이 매일 같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되는 희소가치 덕분에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로 대접 받는 루왁 커피는 동남아를 다녀간 한국 관광객들 손에 빠짐없이 들려 있는 인기 아이템이다.

커피 문화의 천국 동남아에는 최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경제 성장 및 글로벌화 물결 속에 커피 산업의 상업화, 대형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중상류층과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백화점, 대형 쇼핑몰 등을 중심으로 현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급증하고 있다. 베트남 하이랜드 커피, 필리핀 보스 커피, 인도네시아의 엑셀소 카페 등이 대표적이다. 유기농 스페셜티 커피를 표방하는 태국의 도이창 커피처럼 고급화에 승부를 거는 브랜드들도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초부터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선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비롯한 다국적 커피 프랜차이즈의 현지 진출에도 한층 속도가 붙고 있다. 포화 상태인 국내를 벗어나 동남아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한국 커피 전문점의 발걸음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생산지만이 아닌 소비 시장으로도 주가를 높여 가는 동남아의 커피 문화가 어떻게 진화할지 자못 궁금하다.

방정환ㆍ아세안 비즈니스 센터 이사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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