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비핵화 가치 일깨운 북핵 문제
북한과의 타협은 적폐를 용인하는 것
우리가 북핵의 완전한 해결 주도해야
인상적인 장면이 몇 있다. 우선 남미ㆍ유럽 국가들이 북한 대사를 연달아 추방하고, 필리핀이나 태국처럼 전통적으로 남북 등거리 외교를 하던 나라까지 대북 교역을 중단하거나 현격히 줄이기로 했다는 뉴스다. 남미나 유럽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구경꾼이나 다름없다. 북핵이 자신들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북한과 척을 지면서까지 꼭 제재해야 할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나라까지 대북 제재에 나섰다는 것은 비핵화와 평화라는 가치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북한을 감싸기만 하던 중국이 북한 제재에 ‘의지’를 보이는 것도 고무적이다. 북한산 석탄 전면 수입금지, 석유류에 대한 제한적 제재에 이어 이번에는 중국 내 모든 북한 합자기업을 120일 이내에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시중은행에 북한 기업과의 신규계좌 개설을 금지토록 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들도 중국의 비자연장 거부로 대거 귀국길에 올랐다고 한다. 물론, 안보리 대북결의와 미국의 독자제재에 따른 것이겠지만, 중국이 대북제재에 이렇게 적극성을 보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이를 보면서 이런 조치를 왜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북한 정권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그 동안 제재의 뒷문 역할을 했던 중국의 논리가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제재무용론을 내세우기 전에 ‘제대로 된 제재’에 한번이라도 힘을 합쳤다면 북핵 사태가 이 지경이 됐을까.
북핵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다. 수십 년 간 모른 체 하거나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이제 와서 감당 못할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전략폭격기를 해상분계선 북쪽으로 띄워보내는 충격요법을 비난하기 전에 그 동안 켜켜이 쌓인 폐해의 심각성을 먼저 인식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한미동맹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 한미동맹 붕괴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내해야 한다는 식이다. 북핵도 상황에 따라서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다.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지금 국제사회가 비핵화를 위해 벌이는 힘겨운 싸움을 뭘로 보는 것이냐는 분노까지 치밀어 오른다. ‘대북특사 파견’ 역시 이쯤에서 적당히 타협하자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문 특보를 비롯한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핵을 가진 북한과의 동거를 은근히 즐길 지 모르나 국제여론은 그렇지 한가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럽ㆍ남미 국가들까지 외교단절에 나설 정도로 북핵은 전 세계 비핵화의 상징적 사건이 된 지 오래다. 우리에게는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명분도, 그럴 능력도 없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군사옵션이 있다”고 했다. 북한의 반격으로부터 서울을 보호하면서 군사적으로 북핵을 제거할 수 있다니 최상의 묘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해법이 한국을 배제한 미국 단독, 혹은 미국ㆍ일본만의 군사작전에 의한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북한이나 중국에 보복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한국군이나 주한미군을 군사작전에서 배제하거나, 이른바 ‘한국작전전구(KTO)’ 밖에서 미국이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핵을 제거하는 방안 등이라고 한다. 우리의 국익이나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는 당연히 없다. 우리 정부와 사전 충분한 협의를 거쳤는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이번 전략폭격기의 북방한계선 출격은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북핵을 적당히 타협하거나 단시일에 해결하겠다는 조급증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적이다. 끈질기게 압박해 북한 스스로 핵의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게 최선이다. 핵무기를 완성단계에서 폐기한 국제사례도 많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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