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20년 동안, 포지션 별 최고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받는 골든글러브도, 2004년 타점왕을 제외하고 타이틀도 가져가 본 적이 없지만 어느 팀을 가든 구성원들에게 한결 같이 사랑을 받았다. 야구 인생도 나름 잘 풀렸다. 2007년 SK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4년 34억원에 ‘대박 계약’을 했다. 선수 말년인 2012년 말에는 3년 20억원에 신생 팀 NC와 FA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를 두고 ‘인생은 이호준처럼’, ‘로또준’(로또+이호준)이라는 말이 야구 팬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1994년 해태(현 KIA) 고졸 신인으로 프로에 뛰어든 24년차 이호준(41ㆍNC)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30일 창원 넥센전에서 NC 구단이 준비한 은퇴 경기를 치른다. 경기 전 이호준이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하고 첫째 아들 이동훈군이 시타를, 둘째 아들 이동욱군이 시포를 한다. 경기 후에는 이호준 헌정 영상 상영과 다이노스 아너스 클럽 가입식 등 본격적인 은퇴 행사가 펼쳐진다.
올 시즌 후 은퇴를 예고한 ‘국민 타자’ 이승엽(41ㆍ삼성)에게 가려져 있지만 이호준도 전국 각 구장을 돌며 ‘소박한’ 비공식 은퇴 투어를 했다. 이호준은 “후배들이 해주고, 구단들이 흔쾌히 받아줘 감사하다”며 고마워했다. 본인 스스로는 자세를 낮췄지만 KBO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존경 받아 마땅하다.
28일 현재 통산 루타(3,264) 3위, 통산 타점(1,262) 3위, 통산 홈런(336)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200타점은 오른손 타자 최초, 홈런은 홍성흔(340개ㆍ전 두산)에 이은 우타자 2위다. 내심 홍성흔을 뛰어 넘는 우타자 최다 홈런 경신을 노렸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이 이제는 얼마 없다.
이호준의 선수 생활은 파란만장했다. 1994년 해태 입단 당시 투수로 도전장을 던졌지만 그 해 8경기에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0.22(12⅓이닝 14실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내고 1996년 타자로 전향했다.
해태에서 발전 가능성을 보였던 ‘타자 이호준’은 2000년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은 뒤 꽃을 피웠다. 2002년 첫 20홈런 고지를 밟은 데 이어 2003년 30홈런-100타점을 달성하며 팀을 창단 첫 가을 야구로 이끌었다. 2004년엔 데뷔 후 처음으로 타격 타이틀인 타점왕(112)을 가져갔다. 또 2007년과 2008년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기쁨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팀 내 입지가 예전 같지 않자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2012년 말 신생 팀 NC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로 했다. 2013년 1군 진입 첫 시즌부터 주장을 맡은 이호준은 유쾌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젊은 피’들을 이끌며 ‘호부지’(이호준+아버지)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리고 NC에서 4년 연속 20홈런을 치고,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도 견인했다. 올 시즌에는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74경기에서 6홈런 33타점의 성적을 냈다.
이호준은 “처음에 은퇴가 아쉬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며 “내 은퇴 때문에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팀이 마지막까지 치열한 3위 다툼을 하고 있고, 가을 야구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정말 행복하게 야구했다”며 “마지막 욕심이 있다면 우승하고 후배들과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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