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택배업체 내걸고 구인
솔깃해 가면 “트럭 먼저 계약”
수천만 원 받곤 택배 업무 발뺌
택배 사칭 ‘지입차 사기’ 기승
“계약서 서명 후엔 구제 어려워”
취업난에 시달리던 구직자 강모(33)씨는 6월 취업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광고에 솔깃했다. 대기업 택배업체 C사가 기사를 모집하는데 '월 400만원 이상 급여와 오후 6시 퇴근'이라는 근무조건을 제시했기 때문. 그러나 강씨가 공고 안내에 따라 방문한 곳은 C사가 아닌 I물류회사였다. 미심쩍었지만 “일단 차량 계약부터 하면 정식 협약을 맺은 C사와 연결해주겠다”라면서 C사 명함까지 내민 직원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하겠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시가보다 800만원 정도 비싸게 부른 화물차량을 사려고 2,450만원을 어렵게 구했다.
강씨가 받은 차량은 가관이었다. 우선 번호판 자체가 달랐다. 택배 배달을 하려면 본인이 트럭을 사 택배회사와 계약을 하고 노란 영업용 번호판을 받아야 하는데, 분명 하얀색 일반 번호판이었다. 강씨는 “게다가 I사는 C사와 아무런 협약 관계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씨가 화물차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I사 측은 “단순 변심이니 계약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거부했다. 결국 지난 5일 I사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택배업종 구직자 상대 차량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구직난이 심각해지면서 운전면허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택배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청년이나 퇴직자가 늘고 있는 점, 이들이 업계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맹점을 노린 것이다.
수법은 허위 광고로 택배 기사를 모집해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차량을 파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지입차(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 차량) 사기’라 불린다. 그 뿐이 아니다. 대기업 택배회사를 사칭, 근로 조건을 한껏 부풀려 구직자를 유혹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취업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면서 구직자들이 계약서를 상세히 살펴보지 않은 채 서명하도록 유도한다. 뒤늦게 차 값이 비싸다고, 근로조건이 광고와 다르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면 “계약서대로 했을 뿐”이라고 발뺌한다.
실제 심모(26)씨는 7월 말 한 물류회사 꼬드김에 넘어가 택배 차로 쓰기 어려운 ‘냉동 탑차(지붕이나 뚜껑이 있는 화물차)’를 인수했다. 심씨가 서울시 민생상담신고창구를 찾자 사측은 터무니 없는 합의금을 제시하며 “합의 안 하면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이런 피해 사례가 쏟아진다. 물류회사가 차량 계약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택배회사와 연결해 주지 않아 손실이 발생했다거나 처음 광고와는 전혀 다른 회사를 연결해줬다는 증언 등이다. 심지어 중고차를 새 차로 둔갑시켜 계약하게 한 사례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행각을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구두로 한 약속은 책임을 입증하기 어렵고 더더욱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면 상호 동의 하에 이뤄진 거라 법에 저촉될 소지가 적다"며 “터무니 없이 좋은 조건은 한 번쯤 의심하고, 계약서를 꼼꼼히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