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이유서 지각 제출과 별개로 판단
항소 기각 면했지만 불이익은 불가피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을 놓쳐 기회를 날릴 뻔 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원 판단으로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각 제출’한 항소이유서와 별개로 직권으로 조사해볼 만한 쟁점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면서 김 전 실장은 겨우 항소 기각을 면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26일 김 전 실장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피고인의 항소이유서는 제출 기한이 지나 제출돼 적법하지 않다”며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직권조사 사유 범위 내에서 본안을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문화ㆍ예술계 지원 배제(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단 실수로 항소이유서를 기한 내 내지 못했다. 형사소송법상 항소이유서는 당사자나 변호인이 ‘소송 기록 접수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내도록 돼 있는데 ‘최순실 특검법’은 재판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이 기간을 7일로 규정했다. 김 전 실장 측은 지난달 29일까지 서울고법에 내야 했던 항소이유서를 30일 오전 3시에야 냈다. 형사소송법상 항소장만 제출하고 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내지 않으면 재판부가 항소를 기각하도록 돼 있다.
이날 공판준비절차에서 김 전 실장 측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형사소송법에 항소이유서를 내지 않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해 조사할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항소를 기각하지 않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점을 공략한 것이다. 김 전 실장 측은 “형식적으로 명명백백하게 기한을 못 지켰다”고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항소이유서와 관계없이 심리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위증죄 부분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활동 종료 이후 고발이 이뤄져 소추 요건이 성립하지 않고, 직권남용 부분은 공소장에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 전 실장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공판준비기일임에도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반면 특검은 당연히 법이 정한 기한을 넘겼으니 항소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직권조사를 받아들여 김 전 실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특검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에서 항소심을 시작하게 됐다. 항소이유서에 담긴 쟁점 전부에 대해 재판부가 심리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늦게 낸 항소이유서가 적법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에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쟁점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대체로 직권조사 사유를 법리 오인이나 증거능력 판단 등 형식적ㆍ절차적 사유로 한정해 보는 만큼 사실 오인이나 양형 부당에 대해선 다투기가 어렵다. 재판부는 “직권조사 범위에 대해서는 향후 재판에서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첫 정식 재판은 다음달 17일 열린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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