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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장례식엔 내가 좋아하는 노란 프리지어를!

입력
2017.09.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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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에 대한 관심 높아지면서

엄숙하고 천편일률적인 형식 탈피

추모 모임 형태 ‘작은 장례식’ 소망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서도 몇 해 전부터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람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는 명제가 익숙하다. 죽음을 말하길 꺼리고, 장례는 엄숙하고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죽음 이후를 고민하는 것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임종을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지 오래다. 일본 노인들은 간병부터 연명치료, 장례 절차, 유산 배분 등을 미리 준비해 자신의 죽음에 대비한다. 장례시설이나 자신이 묻힐 묘지를 둘러보는 ‘슈카쓰 버스 투어’가 인기를 끌고, 같은 납골당이나 수목장에 안장될 사람들끼리 생전에 어울리는 이른바 무덤 친구란 뜻의 ‘하카토모(墓友)’라는 단어도 생겨났을 정도다.

지난해 서울의료원 장례문화 서비스디자인팀에서는 ‘내가 바라는 나의 장례식’이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연령대 별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들을 추려냈다. 20대에서는 ‘나’, ‘나를 대변하는’, ‘친구’, ‘독립적인’ 등 과거 전통적인 장례식과는 다소 멀어 보이는 단어들이 나왔다. 30대(쉼 자연 정리 위로 등)와 40대(추억 집 공감 편안한 등)는 ‘휴식’이란 키워드로 자신의 장례식을 표현했다. 50대에선 ‘가족’과 ‘종교’, ‘격려’, ‘교통이 편리한’ 등 실용적인 단어가, 60대 이상에선 ‘남들처럼’, ‘전통’, ‘타인에게 번거롭지 않길’ 등의 표현이 나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장례문화는 이런 개인들의 바람을 잘 담아내고 있을까. 장례식부터 장묘, 제사문화, 유산 상속에 대한 다양한 소망을 들어봤다.

경기 안성의 한 추모공원에서 유족들이 수목장을 치르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배우한 기자
경기 안성의 한 추모공원에서 유족들이 수목장을 치르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배우한 기자

전문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아 3일장 형태로 치르는 틀에 박힌 장례 문화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은 거부감을 드러낸다. “내 장례식은 좀 달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현재 장례 관행에 보다 더 비판적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이만호(43)씨는 “결혼식은 작은 결혼식이나 주례 없는 결혼식처럼 다양한 시도가 나오는데, 장례식은 상조업체 탓인지 판에 박힌 듯 똑같다”면서 “절차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보니, 정작 고인을 진심으로 추모하거나 그리워하는 시간은 갖지 못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소박한 장례식을 꿈꾼다고 했다. “‘내 장례식을 어떻게 특별하게 꾸밀까’라는 로맨틱한 생각보다는, 내가 죽었을 때 남은 가족들의 생계 걱정에 겁부터 덜컥 나요. 불필요한 의전과 비용을 최대한 줄여 추모 위주의 작은 장례식으로 치르면 좋겠어요.”

프리랜서 엄성민(32)씨 역시 판에 박힌 장례식에 염증을 나타냈다. 그는 “내 장례식은 3일장 대신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만 모여 하루 저녁에 소화할 수 있는 추모 모임 형태로 갖고 싶다”고 했다. “추모 모임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대표로 나에 대한 글을 써와 낭독하며 내 삶을 정리해 주면 좋겠어요.” 엄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대학생 김한솔(24)씨 역시 “장례식장에서 예절에 어긋나지 않게 조문을 하려다 보면 추모 보다는 조문 순서만 생각하게 된다”면서 “내 장례식은 평소 내가 좋아했던 물건이나 음식을 차려 놓고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치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교적 고연령층은 이미 익숙한 장례식의 큰 틀을 바꾸지는 않는 선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을 선호했다. 주부 전화순(68)씨는 유족이 손님 맞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대의 장례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씨는 “장례식은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남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고인이 죽었다는 걸 받아들 수 있게 하는 과정이 장례식인데, 크고 시끄럽게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왜 돌아가셨냐’ ‘괜찮냐’고 말도 붙여주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전씨도 장례식에 작은 개성을 담고 싶어 한다. “흰 국화와 향 냄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 장례식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프리지어가 가득 쌓였으면 좋겠어요.”

회사원 윤영섭(54)씨는 장례식을 일부러 간소화하지 않아도 앞으로 자연스레 축소될 것으로 봤다. 그는 “나는 아버지 장례를 고향 집에서 치른 거의 마지막 세대”라면서 “앞으로는 과거보다 자녀 수도 적고, 친인척 관계도 소원하기 때문에 장례 문화가 지금보다 더 간소화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장례식을 치르되, 내 사진으로 만든 간단한 영상물을 빈소에서 틀어 놓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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