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수촌 ‘진천 시대’가 개막하면서 51년 동안 한국 체육의 요람으로 기능해 온 태릉선수촌이 본격 철거 위기를 맞았다. 태릉선수촌 존폐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09년이다. ‘조선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가 훼손 능역을 복구하라고 권고하면서다. 이를 위해선 조선 13대 국왕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가 잠든 태릉과 명종, 인순왕후를 합장한 강릉 사이에 자리한 태릉선수촌을 철거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태릉선수촌을 철거할 계획을 세웠다.
체육계는 반발했다. 대한체육회는 2015년 7월 “대한민국 스포츠의 요람이자 최초의 국가대표 선수 훈련시설인 태릉선수촌의 역사적 가치를 살려야 한다”며 태릉선수촌 건축물 7개 동과 운동장 1기에 대한 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에 의해 필수 철거시설로 선정된 국제스케이트장은 2013년 리모델링을 한 데다 지금까지 총 1,000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됐고, 일반시민들도 이용하는 시설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이 곳은 수도권 유일의 400m 국제 규격 빙상장이라 그 기능이 유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도 태릉선수촌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존치론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조선 왕릉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당시 태릉 복원 계획을 포함시킨 만큼 이를 실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체육회는 지난해 3월 문화재청의 등록 심사 보류 결정에 맞서 보완 자료를 첨부해 등록문화재 재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이기흥 체육회 회장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유네스코와의 (태릉 보존) 약속도 중요하지만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태릉선수촌의 존치와 공존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한다”며 “챔피언하우스를 박물관으로 쓰는 등 다양한 구상들을 문화재청, 역사문화보존위원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릉선수촌 존폐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회장은 “유네스코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잘 설명해서 매듭을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서도 “국회, 정부 관계자,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수정안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러 관계자들이 대체로 수용 하고 있는 분위기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