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안압지 북동쪽서 발견
석조 변기에 배수시설도 갖춰
“고급 화강암, 왕실 사용 추정”
통일신라 시대에 왕실에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발견됐다. 국내에서 화장실 건물과 변기, 오물 배수시설이 모두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 북동쪽 지역에서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변기와 배수시설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돌로 만들어진 변기는 양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판석형 석조물과 그 밑으로 오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다. 이 석조물은 2015년 말 처음 발견됐으나 그 사용처는 쉽게 밝혀지지 않았다. 장은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단순히 건물 내의 바닥인지, 구멍에 무엇을 보관하는 용도인지 알 수 없어 많은 논의를 했다”며 “올해 이 석조물의 하부구조가 발견되면서 화장실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변기 아래에서는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변기형 석조물을 통해 내려간 오물은 이 암거(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시설)를 통해 배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을 유입하는 설비까지 따로 갖춰지지는 않은 점으로 미뤄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변기에 흘려 보낸 것으로 연구소는 보고 있다. 연구소 측은 “고급 석재인 화강암이 쓰였고, 변기 하부와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을 하는 전돌을 깐 것을 보면 신라왕실에서 사용한 고급 화장실로 판단된다”고 했다.
앞서 전북 익산 왕궁리에서는 7세기 중엽에 조성된 화장실 유적이 나왔지만 석조 변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주 불국사에서는 8세기에 제작된 변기형 석조물만 출토됐다. 현재 발굴된 지역은 전체 동궁 유적지 중 일부이기 때문에 더 많은 화장실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74년 지어진 동궁과 월지에서는 1975년 조사에서 인공 연못과 섬, 건물지가 발굴됐고 유물 3만여점이 출토됐다. 2007년부터는 동궁과 월지 북동쪽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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