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현지 킬러를 고용해 채무 관계에 있는 60대 남성을 살해해 달라고 지시한 한국인이 사건 발생 4년 만에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현지 청부살인업자 A씨에게 30만페소(약 750만원)를 주고 허모(당시 64)씨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살인교사)로 신모(43)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허씨는 2014년 2월 필리핀 앙헬레스에 있는 한 호텔 인근 거리에서 A씨가 쏜 권총 6발을 맞고 즉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도박에 빠져 살던 신씨는 2012년 현지 카지노에서 환전 업무를 하는 허씨에게 사업비 명목으로 5억원을 빌렸다. 이후 도박으로 가진 돈을 1년 만에 모두 탕진하게 되면서 허씨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 1월 신씨로부터 청부를 받은 A씨는 세 차례에 걸쳐 허씨를 살해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두 차례 살해 시도가 실패하자 신씨가 직접 허씨에게 저녁을 접대하겠다면서 호텔 주변으로 유인했고 이 틈을 노려 A씨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신씨를 유력 용의자로 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정적인 증언은 같은 해 9월에야 나왔다. 신씨 운전기사였던 B씨가 A씨 일당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게 되면서 한국 영사 등을 통해 경찰에 접촉을 해 온 것. 경찰은 B씨 진술을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해 올해 4월 총기대여자 C를 접촉, 살인범 인적 사항과 사건 과정을 상세히 밝혀낼 수 있었다. 신씨가 A씨 일당에게 허씨 사진을 보냈다는 사실과, 지인에게 청부 살해 내용을 고백하는 내용이 담긴 통화 음성파일도 확보했다.
신씨는 경찰 증거자료를 제시하자 올해 5월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추가 조사를 진행해 이달 18일 신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에서 발생한 청부살인을 지시한 교사범이 국내에서 구속된 건 처음”이라며 “살인청부업자 A씨 일당을 잡아들이기 위해 필리핀 사법당국 및 인터폴에 공조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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