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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이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혀서 묻어줘”

입력
2017.09.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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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이 드레스를 입혀주세요. 더 경건한 마음으로 천국에 갈수 있도록.”

미국 보스톤대학교에 재학중인 수잔 섕크(23)는 지난 5월 한 모델이 입은 흰색 드레스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를 트위터에 올렸다. ‘경건한 마음’을 얘기한 것과 달리 사진 속 드레스는 노출이 강조돼 헐리우드 배우들이나 입을 법 한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섕크는 “천국에 갈 때 나의 패션감각과 몸매가 변함없기를 바라며 드레스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미국 청년들 사이에 자신이 죽은 뒤 입을 옷을 골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청년들은 섕크가 한 것처럼 트위터나 사진기반SNS인 인스타그램에 ‘#이옷을입혀서묻어줘(#Burymeinthisoutfit)’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직접 고른 장례의상을 공개하고 있다.

고인에게 항상 노란 삼베수의를 입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장례의상으로 정장이나 예복을 입는다. 이 같은 문화적 특성을 감안해도 미국 10~30대들의 ‘장례의상선언’은 독특하다. 이들은 단지 예쁘고 멋진 옷만 고르는 게 아니라 평소 즐겨 입던 티셔츠나 운동복,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양말까지 장례의상으로 고르고 있다.

수의는 ‘나’를 표현할 마지막 기회

30년간 장례지도사로 일해온 칼레브 와일드는 “기성복뿐 아니라 장례의상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람들은 고인에게 단정하고 경건한 의례복을 입혔다. 죽음은 신에게 다가가는 종교적 사건이기에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나 종교적 색채가 덜 한 세대가 사망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주말 나들이 복장 같은 화려한 옷이 장례복으로 등장했다.

청년 세대의 ‘장례의상선언’ 역시 자기표현이 최대의 가치가 된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텍사스 베일러대의 데이비드 조리 인류학과 교수는 “고인이 원하는 특정 의상을 입혀 장례를 치러달라는 요청은 ‘이 옷이 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기 때문에 이걸 입고 영원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망자를 위한 장례의상’이라는 개념 역시 새롭다고 봤다. 그는 “역사적으로 장례의상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고려해 골랐지만 이제는 고인이 장례의 중심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어서까지 체면 차리는 건 피곤해

죽음을 현실과 이별하는 것으로 보는 생각도 장례의상의 변화를 가져온 이유 중 하나다. 죽음이 오랜 잠에 빠져드는 것이라면 굳이 체면 차릴 것 없이 편안한 잠옷을 입고 관에 눕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 장례지도사 와일드는 “청년 세대가 부모의 장례를 치를 때 간혹 ‘생전에 신던 실내화를 신겨달라’는 부탁을 한다”며 “고인이 편할 수 있다면 관습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말로리 구찌(24)는 평소 휴일에 입던 후드티와 레깅스 차림을 장례의상으로 선택했다. 구찌는 “회사에 갈 때는 오랜 시간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지만 죽어서까지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 정말 피곤할 것”이라고 의상 선택 이유를 밝혔다.

이런 흐름은 사회적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역설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다. 조리 교수는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지금 당장 편안한 옷을 입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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