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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법의 지배와 법관의 덕목

입력
2017.09.2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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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타성이 사법개혁 걸림돌

법관의 성품과 덕 등 인격적 요소도 중요해

올곧고 유능한 법관 양성ㆍ임용에 관심 둬야

사법개혁에 대한 사법부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제고시켜 실질적 의미에서 법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이리라.

인간은 변덕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유혹에 빠져 법을 편파적으로 집행하기 쉽다. 따라서 판사들이 사법부 내외의 압력과 유혹을 받지 않고 법규와 법 원칙을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사법부의 독립 및 개별 재판의 독립성 보장은 사법 개혁의 핵심이다. 정치체제의 형태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통합될 수도 있고 분리될 수도 있다(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하지만 법관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 입각하여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독립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옥스퍼드대의 법철학 분야를 이끌어온 라즈(J. Raz)는 법의 지배를 ‘독립적 사법부에 의한 원칙적이며 성실한 법의 적용’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사법적 판단의 전반적 공신력은 한 나라의 권력분립 형태와 사법 전통은 물론, 타당한 법률 해석의 범위와 기존의 판례들, 법조계의 감시와 견제, 재판 결과에 대한 법학자들의 평가와 비판,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응 등 다양한 요인들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대정치사는 무엇보다 사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오래된 타성과 유혹을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법환경 조성의 관건임을 시사한다. 또한 독재 권력에 복무해온 사법부의 치욕스런 과거만을 기억하며 사법적 결정의 권위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민사회의 태도도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제도 개혁에 못지않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결단과 실천도 법의 지배에 긴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법관의 성품과 덕이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승인된 법률을 적용하는 법관의 판단 없이 법의 지배가 실현될 리는 만무하다. 법률에 일반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규칙은 판사의 해석을 통해 개별 소송에서 그 구체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따라서 법규나 법 원칙 및 그것들이 적용되는 소송에 대한 법관의 정확한 이해와 판단은 사법적 정의 실현의 근간이다. 또한 형평과 같은 원칙은 관련 상황에 대한 판사들의 현명한 판단을 통해 적용될 수밖에 없는바, 법의 지배를 더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법해석과 심의 그리고 판결 과정에 작용하는 인격적 요소의 중요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法治와 人治의 기계적인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법의 지배가 무엇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재판을 통해 실현된다고 할 때, 법관과 보조자들의 성품과 덕성은 법치주의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렐리(C. Farrelly)와 솔럼(L. B. Solum)은 ‘덕의 법학’(2008) 서문에서 잘 부패하지 않는 성품과 냉철함, 여론이나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 침착성과 공평무사함, 근면함 및 신중함과 같은 법관의 성품과 덕목들이 지닌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요컨대, 공정하고 독립적인 재판을 위한 법적ㆍ제도적ㆍ문화적 개선의 화룡정점은 다양한 유혹과 압력 및 개인적 편견을 극복하며 법적 정의를 구현하려고 분투하는 법관의 선발과 양성 그리고 임용이다. 훌륭한 제도의 도입이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제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바 사법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하지만 제도 운용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인간의 성품과 능력에 달려있는 만큼, 갖은 외압과 유혹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정의감, 공정하고 정확한 재판에 필요한 풍부한 지식 및 현명한 판단력 등은 법관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다. 이것이 금번의 사법개혁이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 제도의 마련과 함께 올곧고 유능한 법관 양성과 임용 방법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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