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판타지 로맨스다. 배우 이종석이 1년 만의 방송 복귀작으로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택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불행한 사건, 사고를 꿈으로 미리 볼 수 있는 여자(배수지)와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이종석)의 이야기를 그린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피노키오’(2015)를 함께 한 박혜련 작가와의 세 번째 작품인데다, 가수 겸 배우 수지와의 연기 호흡으로 방영 전부터 시청자의 기대를 샀다.
이종석은 유독 판타지 로맨스 장르에 강했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에서 상대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년 박수하를 연기해 시청률을 24%(닐슨코리아 기준)까지 끌어올렸다. MBC ‘더블유’(2016)에서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 됐다. 개인 자산 8,000억원에 달하는 청년 갑부에 우월한 외모, 유머까지 갖춘 만화 주인공 강철을 연기해 여성 팬을 끌어모았다.
뒷심이 떨어진다는 사전제작물임에도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큰 기대를 모은 데는 이종석이 그동안 선보인 캐릭터의 힘이 크다. 이종석을 안방극장의 ‘시청률 보증 수표’로 만든 대표작들을 돌아봤다.
1.SBS ‘시크릿가든’(2010)
하얀 피부에 선한 눈매, 외모는 19세 소년이지만, 중저음의 목소리로 담담한 대사를 던질 땐 묘한 남성미도 느껴진다. 나이 23세의 천재 뮤지션 썬은 톱스타 오스카(윤상현)에게 “바빠”, “꺼져”를 입에 달고 사는 도도한 청년이다. 붉게 탈색한 머리와 귀걸이로 화려한 패션을 구사하면서도 피아노를 칠 때는 피아니스트 뺨치는 우아한 기품을 뽐낸다.
“꺼져”라는 대사를 참 맛깔나게 살렸다. 드라마 데뷔작인 SBS ‘검사 프린세스’(2010) 이후 수 차례 오디션에서 낙방하던 그를 조연급 배우로 만든 것도 그 대사였다. 오디션장에서 김은숙 작가에게 “노래를 못한다”는 면박을 들은 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대본에 있던 대사를 내뱉었는데, “네가 캐릭터를 제일 잘 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캐스팅됐다.
극중 썬은 오스카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로 그려졌다. 과장된 연기로 성 정체성과 캐릭터를 드러낸 여느 드라마 속 동성애자들과는 달리, 이종석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물의 매력을 살려냈다. 오스카를 사랑하는 여자를 배려하며 떠나는 모습까지 담백하게 표현해 신인배우로 처음 대중의 눈도장을 찍었다.
2. KBS2 ‘학교 2013’(2013)
꿈도 없고, 기대도 없고, 의욕도 없다. 과거 싸움꾼이라는 이력을 숨기고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반장 고남순(이종석). 수업 시간에 잠만 자기 일쑤지만, 그래도 학교는 성실하게 나온다. 세상만사 무심한 고남순도 제일 친한 친구에게는 한없이 애틋하고 선생님에게 예의 바른 섬세한 감성을 지녔다. 별다른 감정 변화가 없는 그는 자신 때문에 다리를 쓰지 못해 축구를 포기하게 된 친구 박흥수(김우빈) 앞에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전학생에게 읊어준 나태주 시인의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대사는 ‘학교 2013’의 대표적인 명대사로 남았다.
이전까지 연기력에 대해 의미있는 평가를 듣지 못했지만, ‘학교 2013’으로 연기파 배우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청춘의 방황과 잔잔하게 가슴을 메우는 그들만의 아픔과 상처가 많은 공감을 샀다. 특히 신인이던 배우 김우빈과의 연기 호흡도 좋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학교 2013’으로 연기력을 입증한 이종석은 이후 다작 배우로 거듭났다. 그 해 4월 영화 ‘노브레싱’에서 수영계 유망주 우상 역을 맡아 늘 1등만 추구해야 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애환을 연기했다. 6월엔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SBS 연기대상에서 10대 스타상과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3.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학교 2013’의 고남순보다 더 예민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소년 박수하(이종석)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에겐 10년 동안 짝사랑 해온 누나가 있다. 10년 전 재판에서 그의 아버지를 도와줬던 국선전담변호사가 된 장혜성(이보영)이다. 극중 박수하는 욱하는 성격에 미성숙한 소년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장혜성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는 세련된 로맨티스트가 된다.
이종석이 “작가가 평소 연애에 대한 로망을 작품에 모두 녹여낸 것 같다”고 농담할 정도로 극중 로맨틱한 대사가 많다. 잘못 소화하면 유치한 장면으로 전락할 만큼 장면 곳곳에 애정이 넘친다. “당신 목숨이 다시 위험해졌는데, 어떻게 내 무죄가 더 먼저야. 어떻게 그래.” “목숨 걸고 그 사람 내가 지켜.” “입은 거짓말을 말해도 마음은 거짓말을 못해.” 등 이종석은 낯간지러운 대사를 태연하게 연기했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애초 기대작이 아니었다. 판타지, 로맨스, 법정물 등 여러 장르가 혼합돼 복잡한데다 초능력 소년이라는 설정이 지나치게 허무맹랑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송 프로그램의 대체 프로그램으로 시작했고, 캐스팅에도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해 겨울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4. MBC ‘더블유’(2016)
웹툰 속 주인공이 현실이 됐다. ‘더블유’라는 웹툰 속 주인공 강철(이종석)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수상한 사격 권총 국가대표였으나, 가족을 죽인 범인으로 몰린 이후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범인을 찾겠다는 마음을 먹고 다시 일어선다. 호텔의 대표가 됐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벌이 됐다. 현실에서 웹툰 속으로 들어온 오연주(한효주)를 통해 자신이 만화 속 인물이라는 사실을 각성하고 현실 세계로 나오게 된다.
이종석은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강철의 심리와 현실 속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 기억을 잃은 후의 내면 변화 등 연기의 고저를 잘 표현해 복잡한 이야기 얼개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역할을 했다. 만화라는 설정 특성상 “~죠”로 끝나는 어색한 말투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는 평이다. 이종석은 ‘더블유’로 그해 MBC ‘연기대상’에서 생애 처음 대상을 품에 안았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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