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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다섯 아이 키우며 유튜브 키운 ‘구글의 슈퍼맘’

입력
2017.09.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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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워치츠키 유튜브 CEO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온라인 동영상 콘퍼런스 ‘비드콘 2016’에서 동영상 제작자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필름 매직 제공
수전 워치츠키 유튜브 CEO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온라인 동영상 콘퍼런스 ‘비드콘 2016’에서 동영상 제작자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필름 매직 제공

스티브 잡스가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iMac)을 세상에 내놨던 1998년 컴퓨터에 푹 빠진 미국 스탠퍼드대 학생 2명이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위치한 한 여성의 집 차고로 들어섰다. 이들이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개발한 순간 인터넷 역사에 거대한 획이 그어졌다. 2명의 학생은 바로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다. 이들이 차고에서 밤낮으로 만든 검색 엔진은 6,500억 달러 가치의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매달 1,700달러(약 190만원)를 받고 이들에게 차고를 선뜻 내준 이 여성은 훗날 “페이지와 브린은 밤 늦게 피자와 초콜릿을 먹으면서 나에게 자신들의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지에 대해 들려줬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차고의 주인 역시 ‘구글의 어머니’(Mother of Google)라는 별명과 함께 구글 소유의 ‘온라인 동영상 실시간 재생’(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인 유튜브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게 된다.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8위’(2016년)에 오른 수전 워치츠키(49)다.

워치츠키가 구글의 어머니라고?

워치츠키는 ‘구글의 어머니’를 자임한다. 어머니는 통상 무언가를 탄생하게 만든 ‘창조’의 주체를 뜻한다. 창업자들에게 차고를 빌려줬을 뿐인데 어머니라니, 겸손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이 별명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어있다. 워치츠키는 거대 인터넷 기업의 전문 경영인인 동시에 5명의 아이를 키우는 ‘슈퍼맘’이다. 워치츠키의 자녀들도 구글과 인연이 깊다. 그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 페이지와 브린이 찾아왔다. 워치츠키 역시 16번째 멤버로 구글에 입사했다. 워치츠키는 구글에서 아이를 가진 첫 번째 직원이 됐다. 구글 내부에 탁아소를 만든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이후 구글의 광고프로그램인 애드센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광고업체 더블클릭의 인수 등 워치츠키가 구글에서 굵직한 과업을 일굴 때마다 둘째, 셋째, 넷째 아이가 태어나는 축복이 함께 했다. 워치츠키는 갓 태어난 구글을 거대 기업으로 키우는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구글에서 일하는 워킹맘들의 ‘얼굴’이 됐다.

미 실리콘밸리의 정점에 서있는 완벽한 워킹맘처럼 보이지만 워치츠키는 원래 출세 지향적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주류를 이루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보기 드문 ‘문과’ 출신이다.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고, 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스탠퍼드대 물리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학구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워치츠키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늘 유명한 사람이 되거나 돈을 버는 데 관심이 없었다”며 “단지 열정적으로 흥미로운 것을 추구했다”고 회상했다.

인생의 전화점이 된 것은 1990년 하버드 재학 시절 수강한 컴퓨터 과학입문 과정 ‘CS50’이었다. 그는 지금도 “CS50은 그 동안 들었던 수업 중 가장 놀라운 수업이었다”며 “내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말했다. 컴퓨터와의 만남은 그가 졸업 후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토대가 됐고, 반도체업체인 인텔에서 일할 기회도 줬다.

탄탄대로를 걷던 워치츠키가 임신한 몸으로 인텔을 떠나 수입이 없을 때 고작 자신의 차고에 사무실을 차린 구글에 입사하게 된 건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에 대한 무한한 동경 때문이었다. “무언가 만들 수 있고, 팔 수 있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인터넷으로는 전세계 누구와도 닿을 수 있다”는 게 워치츠키가 이쪽 세계를 알고 난 뒤 줄곧 보내온 찬사다.

구글의 어머니에서 유튜브의 어머니로

이런 워치츠키에게 전 세계를 연결하는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얼마나 생경하고 아름다웠을까. 특히 구글의 광고 혁신을 이끌어온 그에게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유튜브 플랫폼은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워치츠키는 구글의 자체 동영상 서비스인 ‘구글 비디오’를 이끌던 2006년, 16억5,000만달러에 유튜브를 인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수를 반대하던 CEO를 설득한 게 바로 워치츠키였는데, 당시 미국 인터넷 동영상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46%ㆍ구글 비디오 11%)을 차지하고 있던 강력한 경쟁자 유튜브를 끌어안아 동영상 광고 시장을 선점하자는 게 그의 복안이었다.

유튜브는 구글에 인수된 뒤에도 처음엔 수익 창출 수단으로 제 역할을 못한데다 거대 미디어그룹인 바이어컴과 지난한 소송전까지 벌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유튜브는 더블클릭, 애드몹 등 다양한 구글 내 광고 서비스와 결합하며 확실한 ‘캐시카우’로 자리잡았다. 포브스에 따르면 인수 당시 16억5,000만달러였던 유튜브의 기업가치는 최근 70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광고에 일가견이 있었던 워치츠키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다.

워치츠키는 2014년 2월 직접 유튜브를 이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유튜브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열린 온라인 동영상 콘퍼런스 ‘비드콘 2016’에서 워치츠키가 발표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유튜브 개혁의 방향성을 어림잡을 수 있다. 워치츠키가 가장 방점을 둔 것은 ‘공동체’였다. “당신이 속할 곳을 찾고 있다면 우리에게 오라”는 그의 메시지처럼 유튜브 플랫폼은 하나의 세계가 됐다. 특히 1980년대 초반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청소년들은 유튜브 제작자들과 유대감이 깊다. 워치츠키는 동영상을 매개로 한 젊은이들의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해 동영상 제작자들에게 수익 창출 기회를 적극 부여하는 지원책을 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번지는 ‘어머니 리더십’

워치츠키가 구글과 유튜브, 나아가 실리콘밸리를 위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더 많은 여성 인력 창출이다. 워치츠키는 허핑턴포스트에 쓴 기고문을 통해 “첨단기술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26%에 불과하다”며 “노동시장이 컴퓨터, 기술, 엔지니어링과 관련된 분야로 옮겨간다면 여성들은 미래에 좋은 직장을 가질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성친화적 기업을 만들기 위해 ‘몸소’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치츠키가 구글에서 둘째를 가졌을 때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가 직장 생활을 포기할 것으로 점쳤지만, 워치츠키는 이후에도 아이 셋을 더 낳으며 최고경영자 지위에 오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워치츠키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항상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6~9시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치츠키에게 유튜브는 이 같은 신념을 실천하는 무대다. 워치츠키는 “유튜브가 보다 더 다양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여성들이 첨단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 책임감을 느낀다”고 늘 말한다. 실제 그가 수장에 오른 후 유튜브의 여성 인력은 24%에서 30%까지 늘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워치츠키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려놓은 동영상.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는 모습이다. 유튜브 캡처
워치츠키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려놓은 동영상.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는 모습이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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