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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영화제작자 심재명 "엄마와 가난"

입력
2017.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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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어린 시절 읽었던 아동문학전집과 토요일 밤마다 거르지 않고 본 ‘주말의 명화’”에서 영화 인생의 뿌리를 찾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어린 시절 읽었던 아동문학전집과 토요일 밤마다 거르지 않고 본 ‘주말의 명화’”에서 영화 인생의 뿌리를 찾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엄마 돌아가신 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다.

이제는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그리움 죄책감 따위에서 좀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한테 ‘사로잡혀’ 있다. 다소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어쩌다 받게 되는 상대방의 비난에 부끄러울 정도로 발끈하는 나의 성격은 모두 엄마 탓이다, 라고 나는 변명한다.

평생 남편을 미워하며 살았던, 혹은 그 미움의 감정으로 고단한 삶을 지탱했던 엄마가 어린 시절 내게 했던 무수한 말 중에 “지 애비 닮아서…”란 비난이 나는 지독하게 싫었다.

엄마는 부모에 대한 바람직한 상을 심어주는 대신 자신의 불행을 내게 투사했다. 그러므로 어린 나도 불행했다. 어렸을 땐 잠자는 시간을 빼곤 하루 종일 공상과 망상에 빠져 살았다. 소공녀의 세라처럼, 그녀가 상상했던 아름다운 방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현실로 짠 하고 만들어준 것처럼, 초라한 내 방도 옷차림도 어느 날 마술처럼 화려하고 예뻐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친구들과 선생들에게는 집에 피아노가 있고 전축이 있다고 거짓말을 일삼았고, 늦은 밤에는 아버지의 양복주머니에서 한 800원쯤의 돈을 훔쳐 다음 날 극장으로 숨어들어 갔다. 부끄러운 비행은 더 많았다. 4남매 중 유난히 부모 속을 썩이는 아이였던 셈이다.

엄마는 나를 포함 4남매를 그러나 지독히 사랑했고 또한 헌신했다. 엄마의 나를 향한 힐난과 사랑의 양가적 감정 때문에 언제나 불안한 감정 상태의 불완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나는 또 변명하지만,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1%의 의심도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온전히 자식들을 위해 살았다. 자는 시간 빼곤 4남매 치다꺼리와 살림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 부업까지 놓치지 않았다. 한 스무 시간쯤 일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위해선 립스틱 하나, 구두 한 켤레 제대로 사는 법이 없었다. 집안 형편을 알면서도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다고 떼를 써 화실에 다니게 된 나를 위해 엄마는 일단 화실 선생에게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두 달쯤 다니다가 심드렁해진 나는 스스로 화실을 그만두었고, 엄마는 두 달치 수업료를 어렵게 마련해 자신의 신분증을 돌려받았다.

먹고 사는 것에 급급했던 부모님 때문에 동화책의 존재는 초등학교 입학해서 교실 뒤편에 놓인 학급문고들을 보고 처음 알았다. 부유했던 고모 댁에 놀러 갈 때면 사촌의 방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아동문학전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붉은 하드커버가 고급스러웠던 계몽사의 ‘소년 소녀 세계문학전집 50권’을 한번 갈 때마다 서너 권씩 집으로 빌려와 읽고는 꼬박꼬박 반납하곤 했다. ‘작은 아씨들’ ‘쿠오레’ ‘소공자’ ‘톰 소여의 모험’… 50권의 세상이 결핍의 감정에 시달렸던 어린 나를 위로하고 기쁘게 했다. 나는 깐깐한 고모부에게 그 50권 중 기어코 한 권을 돌려주지 않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작가의 ‘쿠오레’. 1971년 발행된 책이니 이제 46년이 되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 전집이 들어온 건 1975년 삼중당 문고가 처음이었다. 한 권에 150원이었나, 200원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죄와 벌’ ‘데미안’ ‘수레 바퀴 밑에서’ 등 서양의 소설들과 ‘B 사감과 러브레터’ ‘메밀꽃 필 무렵’ ‘소나기’ 같은 한국의 소설, 천경자의 수필까지 손바닥만 한 크기에 깨알 같은 글씨가 동서양을 가로질러 내게로 왔다.

심재명 대표가 지금까지 줄곧 간직하고 있는 아동소설 ‘쿠오레’. 심재명 대표 제공
심재명 대표가 지금까지 줄곧 간직하고 있는 아동소설 ‘쿠오레’. 심재명 대표 제공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바꾸게 한 건 TV의 ‘주말의 명화’였다. 매주 토요일 밤 다소 장엄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시작했던 더빙 판 외국영화 방영 프로그램을 몇 년간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것 같다.

열다섯 살의 봄밤. 나는 그날도 ‘주말의 명화’를 보았다. 부모님과 동생이 자고 있던 안방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TV를 켜고 주말의 명화 ‘몽파르나스의 등불’을 보았다.

프랑스의 고전적 미남 제라르 필립이 모딜리아니로 분하고 아누크 에메가 그의 연인으로 나온 일종의 전기영화였다. 후기 인상파의 독보적 천재인 모딜리아니의 지독히도 불행한 삶을 그린 것으로, 나는 그날 그 영화를 본 후 토요일 밤을 꼴딱 새웠다. 흠모하던 화가의 이야기를 그토록 미려하게 그려낸 ‘영화’라는 매체에 홀딱 빠져버렸다. 일기장에 영화감상을 써 내려가며 울고, 필립의 어떤 표정들을 흉내 내며 (괴이하다!) 전율했다. 뭔지 잘 모르지만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된, 토요일 밤과 새벽이었다.

엄마를 이해하고 진짜 사랑하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번 돈으로 엄마의 원피스를 사드리려고 백화점에 함께 가 구두를 신겨드리고, 그제서야 엄마가 유머가 넘치고 귀여운 구석도 아주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나 서른 살쯤 되었을 때 엄마와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춰 명동 거리를 걸으며, 수 십 년 전 아득하게 아름다웠던 어느 여름날을 생각했다.

엄마는 어디서 얻었는지 옥색 바탕에 잔잔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깔깔이 천을 가져와 엄마와 나의 원피스를 지었다. 엄마는 양산을 쓰고, 나는 흰 양말을 신고 우리는 발을 맞춰 아차산 중턱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을 향해 걸었다. 엄마와 똑같은 원피스를 차려 입어 말 할 수 없이 설레며 걸었던 그 여름날의 기억은 너무 달콤해서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엄마는 내 곁에 없지만, 한 권 남겨둔 동화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무엇들로 여전히 내 속에 있다. 나를 키운 8할에는 엄마와 가난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엄마와 내가 함께 걸었던 그 여름의 풍경처럼, 계몽사 전집과 삼중당 문고, 그리고 주말의 명화가 있다.

심재명 영화제작자(명필름 대표)

화가 모딜리아니의 불꽃 같은 삶과 사랑을 담은 고전영화 ‘몽파르나스의 등불’.
화가 모딜리아니의 불꽃 같은 삶과 사랑을 담은 고전영화 ‘몽파르나스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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