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 꿈을 이룬 ‘빅보이’ 이대호(35ㆍ롯데)에게 선택지는 많았다. 차기 행선지로 한ㆍ미ㆍ일 모두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런데 유독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2014년과 2015년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했던 강렬함을 기억하는 한신, 지바 롯데, 라쿠텐 등이 이대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고향 팀 롯데를 택했다. 아직 수 년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응원해주고 기다려준 팬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메이저리그의 거액 제안을 뿌리치고 기량이 떨어지기 전 친정 팀 히로시마로 돌아가 은퇴 전 팀 우승을 이끈 일본인 투수 구로다 히로키 처럼 이대호도 같은 그림을 그렸다.
4년 총액 150억원에 도장을 찍고 2011년 이후 6년 만에 고향 품에 안긴 이대호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장 완장을 차고 4번 타자로 올 4월2일 사직구장 홈 복귀전 첫 타석부터 홈런을 치더니 어느덧 시즌 종착역까지 팀을 이끌며 5년 만의 ‘가을 야구’도 확정했다. 슈퍼스타의 귀환에 사직구장을 떠났던 ‘부산 갈매기’들도 돌아왔다.
이대호의 일본 진출 전 마지막 시즌인 2011년과 2012년 130만 관중이 세계 최대 ‘사직 노래방’을 만들었지만 2013년 77만731명, 2014년 83만820명, 2015년 80만962명, 2016년 85만2,639명으로 발걸음이 뚝 끊겼다. 그러나 올해 ‘이대호 효과’로 사직구장은 다시 사직노래방으로 변했다. 21일 현재 97만3,072명(평균 1만4,102명)이 찾았다. 홈 경기가 세 차례 남은 만큼 5년 만의 100만 관중 돌파는 기정사실이다.
올해 1월 입단 기자회견 당시 “팬들과 함께 웃는 롯데를 만들겠다”고 말했던 이대호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20일 사직구장에서 본보와 단독으로 만난 그는 “돌아오면서 팬들하고 약속했던 것이 이뤄지고 있어 기쁘다”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밝혔다.
후반기 들어 매서운 상승세를 탄 롯데는 4위를 넘어 3위까지 바라보고 있다. 3위 NC와 격차는 불과 0.5경기 차다. 잔여 경기에서 얼마든지 뒤집기가 가능하다. 이대호는 “4번 타자에 주장을 맡아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었는데 팀이 상위권에 올라와 부담을 덜었다”면서 “선수단 전체가 다같이 하려고 하니까 좋은 팀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대호 효과’라는 표현에 대해선 손사래를 치며 “모든 선수들이 잘해서 팬들도 돌아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호는 이번 시즌 137경기에 나가 타율 0.329 33홈런 107타점으로 팬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켰다. 그는 “6년 만에 돌아와 한국 야구를 잘 모르고, 투수들도 몰랐다”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지만 쫓기듯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을 때 돌아왔으니까 자신은 있었다”고 했다. 이어 “3할-30홈런-100타점은 다른 리그에서도 쉽지 않은 기록”이라며 “이 정도면 괜찮다고 본다. 더 나은 개인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보다 야구는 팀 플레이니까 내가 못해서 욕먹더라도 4강만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덧붙였다.
언제 가장 돌아오기 잘했다고 느꼈는지에 대해선 “처음 계약했을 때부터 느꼈다. 롯데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감사하게도 많이 찾아줬다. 홈 복귀전 첫 타석 홈런도 팬들의 바람과 기운이 하나로 모아져 이뤄진 것”이라며 “대~호 응원은 일본과 미국에서도 나오긴 했지만 ‘대호’가 한국 이름이니까 한국에서, 사직에서 느끼는 것이 더 좋고 열심히 응원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고마워했다. 후반기 사직노래방이 재현된 것에 대해선 “예전 팬들이 참 많았을 때 느꼈던 기분인데 오랜 만에 다시 보니까 내 집 같았다. 어색함은 없었다”고 했다.
이대호는 올 시즌 보기 드문 장면도 연출했다. 8월9일 kt전에서는 통산 열 번째 도루를 했고, 이튿날 NC전에선 날렵한 다이빙 캐치로 삼중살을 만들기도 했다. 이대호는 “오래 야구를 하다 보면 나오는 일”이라며 “도루는 운이 좋았고, 삼중살도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웃었다. 가장 큰 고비로는 7월 타율 0.259로 침체됐을 때를 꼽으며 “4~5월 (방망이 감이) 너무 좋아서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팀 성적도 같이 떨어지니까 맞물려 슬럼프가 깊어졌다”고 털어놨다. 슬럼프를 극복한 방법에 대해서는 “딱히 계기는 없었다. 어쨌든 다시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고 팀도 살아났다”며 “팀 성적이 좋으면 슬럼프도 빨리 탈출하고, 반대로 안 좋으면 깊어지는 것이 야구의 묘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롯데 구단의 상징적인 존재인 만큼 이제 딸 효린양도 아빠가 유명한 야구 선수라는 것을 알 법도 했지만 이대호는 “아직도 잘 모른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팬들이 아빠를 좋아해주는 것은 알고 있는데 깊이는 잘 모른다”며 “가족이 미국, 일본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야구장을 자주 못 온다. 자주 왔으면 좋겠는데, 다음날 유치원도 가야 하니까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가을 야구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질문에 이대호는 “이제 결실을 이룰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는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한 달만 고생하면 1년 농사가 끝난다. 그 때까지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선수들이 끝까지 안 다치고 다 잘해서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부산=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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