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극장가가 한산하다. 여름 성수기 시장이 끝나고 관객수가 크게 줄었다. 9월 개봉작 가운데 100만명을 넘긴 영화는 ‘살인자의 기억법’(212만명ㆍ영화진흥위원회 18일 기준)과, 지난달 30일 개봉해 사실상 9월 개봉작이나 다름없는 ‘킬러의 보디가드’(150만명) 두 편뿐이다. 18일까지 9월 전체 관객수는 785만명으로, 성수기 흥행작 1편의 관객수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볼 만한 영화는 많다. 7, 8월 여름 시장과 10월 추석 연휴 대목을 피해 틈새를 노린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진 덕분이다. 미국 할리우드 오락영화부터 다큐멘터리 영화와 독립영화 등이 두루 포진해 있고, 공포, 스릴러, 액션, 판타지 등 장르도 다양하다. 늘 이런 분위기라면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종식될 것 같다.
요즘 흥행 1위는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6일 개봉해 18일까지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손익분기점인 220만명에 다다랐다. 주말이면 하루에도 100만명씩 끌어 모으는 여름 성수기 흥행작들과 비교하기엔 머쓱한 성적이지만,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작자 김영하 작가가 출연한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인기가 호재로 작용했다. “안정적인 관객동원력을 보여주는 배우 설경구의 연기”(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도 흥행을 뒷받침했다.
배급사 쇼박스는 다른 경쟁사들이 추석 연휴를 대비해 숨고르기에 들어가던 즈음 ‘살인자의 기억법’을 내놨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중 유일한 상업영화다. 방송가 화제성을 등에 업고 비수기 틈새를 노린 배급 전략이 주효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결국엔 개봉 시점이 흥행을 좌우한다”며 “성수기 끝물을 타는 동시에 성수기 대작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심리 스릴러 장르로 관객을 환기하면서 무주공산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박스오피스 2~4위는 할리우드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와 ‘아메리칸 메이드’ ‘킬러의 보디가드’가 나란히 점유하고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화려한 자동차 액션과 액션에 꼭 들어맞는 음악이 빚어낸 장르적 쾌감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유의 ‘병맛’ 코드와 개성 있는 캐릭터들도 호평을 받았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냉전시대 미국중앙정보국(CIA)과 남미 범죄조직 사이에서 양쪽 모두를 속이고 부를 축적한 민항기 파일럿 배리 씰의 실화를 담고 있다. 14일에 나란히 개봉한 두 영화는 5일 만에 각각 46만명과 29만명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지명수배 1순위 킬러와 그를 보호하게 된 보디가드의 ‘안티 버디’ 코미디 ‘킬러의 보디가드’는 150만명이 봤다.
성장드라마를 공포물로 풀어낸 ‘그것’과, 상상 속 몬스터를 만나 아픔을 치유하는 소년의 이야기 ‘몬스터 콜’은 각각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과 영국도서관협회 선정 카네기상을 수상한 동명 그림책을 토대로 만들어져 원작까지 주목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 ‘귀향’의 후속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배우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 같은 다양성 영화들도 박스오피스를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21일 새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개봉하면, 극장가는 새 판 짜기에 돌입한다. 27일 ‘킹스맨: 골든서클’과 내달 3일 ‘남한산성’ 등 기대작들이 차례로 스크린에 걸린다. 최장 10일간 쉬는 이번 추석에는 여가 활동이 여행과 야외 나들이 등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 극장가엔 비상이 걸렸다. 9월 비수기 영화들의 역할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비수기 극장가는 한해 10번 이상 극장을 찾는 충성 관객층이 지탱한다”며 “이 시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이 높으면 추석 성수기 시장의 전체 규모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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