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부산본부 등 건립특위 구성
“내년 노동절 동상 제막식 목표”
내달부터 노동자상 건립 모금운동
군함도 경험 구연철씨 “노예 그 자체”
구연철(88)씨는 1939년 아홉 살 나이로 일본 ‘군함도’에 첫 발을 디뎠다. 하나뿐인 출입문 위에는 ‘영광의 섬’이라는 큰 현판이 걸렸지만 구씨가 기억한 군함도의 모습은 처절했다. 구씨는 “끼니 때마다 쌀이 아닌 만주에서 콩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를 배급했고, 학교 교실만한 크기의 합숙소에는 40~50명이 수용됐던 것 같다”며 “팔, 다리에 쇠사슬만 없었지 배급을 받으려 줄을 선 노동자들의 모습은 노예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이어 구씨는 “길을 지나면 노무자 관리사무소에서 아침마다 비명소리가 났다”며 “콩찌꺼기를 먹고 탄광에 들어갔는데 일을 못한다고 끌려 나와 구타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씨는 “나라, 자유 잃은 민족은 그렇게 비참했다”며 “우리가 이국에서 왜 그렇게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증언하고 폭로하려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18일 오전 구씨가 참석한 가운데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징용노동자상’(이하 노동자상) 건립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에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노동자의 넋을 기리는 노동자상 건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날 이들은 서울 용산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노동자상 모형을 가져와 소녀상 옆에 세워두고 기자회견을 벌였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 용산역과 인천 부평공원에 각각 노동자상이 건립됐고 부산을 포함해 경남과 울산 등지에서 건립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일제강점기, 자주권을 빼앗긴 나라에서 나의 형제들은 전쟁터와 탄광, 공장으로 끌려갔고 누이들은 ‘위안부’로 끌려갔지만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며 “친일 잔재는 분단냉전으로 살아남았고 70년 간 나라를 좌지우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겨울 거리를 뒤덮은 촛불로 장막 뒤에 숨은 적폐가 드러났고 더 이상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며 “세계 노동절이 128번째를 맞는 내년 5월 1일 이곳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립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포함된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는 먼저 부산의 노동자, 시민이 참여한 100일 릴레이 행동(1인 시위)을 연말까지 진행한다. 다음달부터 노동자상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하며, 12월 28일 소녀상 설립 1주년 기념식과 함께 노동자상 설립 선포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은 내년 노동절인 5월 1일 노동자상 제막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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