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제72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하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오는 23일(현지시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한다.
복수의 유엔 소식통에 따르면 리 외무상은 이날 오후 2시 유엔본부 사무국 건물 27층 회의실을 방문해 구테흐스 총장을 만나 대외용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비공개 대화 시간을 갖는다.
주유엔 북한대표부(대사 자성남)의 요청에 따라 성사된 이번 만남은 유엔 사무총장이 총회에 참석하는 회원국 대표들의 예방을 받고 접견하는 차원에서 통상적으로 약 15분을 할애하지만 북한의 계속되는 핵과 미사일 도발로 세계 평화안보가 위협에 처해진 현 상황을 감안해 대화 시간이 다소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만남은 구테흐스 총장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북한 대표와 마주앉아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유엔의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북한 주민 인권현황, 북한에 억류된 외국인들 문제 등 이슈들이 광범위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잇달아 소집된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일부 이사국이 평화적, 외교적 방법 해결 접근을 위해 사무총장의 ‘중재’(mediation) 역할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데 대해 구테흐스 총장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대화 촉진에 기여하는 어떠한 역할도 할 준비가 돼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양측의 만남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20일 뉴욕 존에프케네디(JFK)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하는 리 외무상은 구테흐스 사무총장과의 만남에 앞서 22일 오전 10시 유엔 내의 개발도상국의 연합체인 77그룹(G-77) 연례장관회의 개회식에 참석한 뒤 같은 날 오후 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총회 연단에 올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정당화 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안보리의 대북 결의를 강력히 비판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이번 연설에는 최근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성공 발사를 내세워 북한의 더욱 진전된 핵무기와 배달수단 능력을 과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리 외무상의 77그룹 개막식 참석은 그룹이 회의에서 채택할 결의 초안에 포함돼 있는 “회원국의 일방적인 대북 경제제재를 배격 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최종안에서 삭제되지 않도록 적극 로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외에도 리 외무상의 참석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행사로는 23일 오후 5시30분 유엔본부 제7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인 아세안-유엔(ASEAN-UN) 장관회의다.
리 외무상이 일각의 예상대로 이 회의에 참석할 경우 역시 회의 참석이 예정돼 있는 강경화 한국 외교부장관과의 조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은 지난 달 7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인 ARF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하던 중 대기실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는 정도 차원의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회의는 21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 참석이 예정된 북한 핵·미사일 대응 논의 안보리 장관급 회의다.
북한은 과거 자신들의 핵·미사일 문제를 다루는 안보리 회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의장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불참해 왔다. 하지만 리 외무상이 이번 회의에 참석을 원할 경우 논의 대상국 자격으로 의장에게 참석 의사를 통보하는 행정 절차를 거쳐 의장으로부터 발언권이 주어진 관련국 대표로 회의에 초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엔 관계자들은 비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는 있지만 만일 그럴 경우 틸러슨 장관과 리 외무상이 한 자리에서 양국의 입장을 서로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북한 대표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리 외무상은 과거 사례를 보아 26일 출국에 앞선 체류기간 중 우호국 외교관들과의 양자접촉 이외에도 유엔인도적지원조정실(OCHA),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등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을 담당한 유엔 기구 관계자들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비롯한 국제단체 대표들과 만남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 외무상은 또 유엔 외부 행사로는 유일하게 재미 교향악단 ‘우륵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23일 오후8시 맨해튼 ‘머킨 콘서트홀’에서 마련한 ‘10.4 평화번영선언 제10주년 기념음악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우륵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사전 광고와는 달리 공연 도중 순서에 북한체제와 ‘김일성 찬가’, ‘김정일 찬가’, ‘김정은 찬가’ 등을 즉석에서 끼워 넣어 연주해와 국내외에서 논란이 빚어진 악단으로 지난 4월 자 대사를 비롯한 북한 대표부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꽃피는 봄 4월’ 공연에는 미주 탈북자들과 뉴욕 한인단체 관계자들이 공연장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행사주최 측인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관계자들과 마찰이 빚어져 뉴욕시경이 현장에 긴급 출동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악단의 단장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퍼 리(한국명 이준무)씨는 미국 내 대표적 친북성향 한인단체인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문화예술분과위원장 겸 동부지역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관람객은 일부 지역 거주 외국인들을 제외하고 주로 단체 회원들과 연관단체 한인들이다.
한편 유엔 사무국에 따르면 구테흐스 총장은 18일 오후 5시25분 역시 사무국 건물 27층에서 이번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접견한다.
뉴욕(유엔본부)=신용일 프리랜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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