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욱ㆍ이호현 소방관 순직
17일 강원 강릉시 경포 인근 정자 석란정. 강릉소방서 소방관 27명이 화재 신고 37분만인 오전 3시59분 정자 전체를 집어삼킨 큰불을 잡았다. 주변 잔불을 정리하던 경포119안전센터 화재진압팀장 이영욱(59) 소방위와 팀원 이호현(27) 소방사는 오전 4시29분쯤 정자 안 중간에서 연기가 나는 걸 발견했다. 지붕 기와가 떨어지고 나무는 축축히 젖었지만 둘은 지체 없이 들어갔다.
순간 정자 지붕을 떠받치던 나무들이 우르르 무너졌고 딸려 떨어진 기와들이 눌렀다. 두 소방관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원들이 즉각 구조에 나섰지만 약 18분 뒤 깔린 잔해더미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소방관의 심장은 멎은 상태였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지만 오후 5시33분 끝내 모두 숨졌다.
이 소방위는 정년퇴임(내년 12월)을 1년 남짓 남겨둔 ‘베테랑’ 소방관이다. 6남2녀 중 일곱째지만 몸이 불편한 노모(91)를 직접 모시기 위해 1994년 서울에서 강릉으로 전입했을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 이후 줄곧 강릉 속초 동해 등 강원 지역에서 근무했고, 두 달 전인 7월 경포119안전센터 화재진압팀장을 맡았다.
마지막 근무지였지만 위험한 현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팀을 통솔하고 화재 현장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오히려 더욱 매일매일 업무에 충실했다”는 게 동료들 얘기다. 그래서 가족의 가슴은 더욱 타 들었다. 고인의 아들 인(36)씨는 “내년엔 가족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계획하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흐느꼈다.
이 소방사는 임용된 지 8개월밖에 안 된 ‘막내’ 소방관이다. 어릴 때부터 꿈꿔온 소방관이 되기 위해 대학도 관련 학과(강원도립대학 소방환경방재학과)로 편입하고, 서울 노량진에서 1년 넘게 공부했다. 지역 소방관 특별채용으로 올해 1월 꿈을 이뤘다.
지인들은 그를 “천생 소방관”이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 이광수(55)씨는 “남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 특성상 체력은 필수라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한 아들이었다”고 했고, 여자친구(27)는 “(사고) 이틀 전 모교에 일일강사로 가 후배들에게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좋다’고 하기도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소방사는 경력을 쌓으면 화재조사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었다. 그가 고대했을 ‘화재조사관 직무교육’이 사고 다음날(18일) 잡혀있지만, 그는 참석할 수 없게 됐다. 그는 평소 “사고가 났을 때 소방관 스스로 몸을 방어하는 훈련이 없다, 50년 뒤에나 바뀌겠지”라고 주변에 아쉬워했다. “자기 방어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유언으로 남았다.
동료 소방관들은 한결같이 “항상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와 대원이었다”고 고인들을 평가했다. 7월부터 이 소방위와 함께 센터에서 일한 허모(29) 소방사는 “팀장이라고 뒤로 빠져 있지 않고, 항상 현장에 먼저 발을 디디는 분이었다”고 했고, 소방관 A씨는 이 소방사에 대해 “센터 막내이면서도 먼저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전했다. 최상규(59) 경포119안전센터장은 “강인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던 이 소방사가 순직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19일 영결식이 열리는 고인들에겐 각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될 것으로 보인다.
소방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화재진압이나 구조활동 등을 하다 숨진 소방관은 49명, 다친 소방관은 3,112명이다. 이날 두 소방관의 죽음으로 순직 소방관은 51명으로 늘어났다.
강릉=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강릉=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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