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보조 그만둔 뒤
“정실장 지독한 공주꽈” 글 써
3만명 가입 카페선 모르지만
카스는 유추 가능해 ‘모욕죄’
2015년 서울 구로구 A부동산에서 공인중개사 강모(59)씨의 보조로 한 달 남짓 일한 정모씨는, 강씨가 일을 그만둔 자신을 온라인 상에서 헐뜯은 사실을 알게 됐다. ‘철없다는 건 진작 알았는데 그게 꼴값을 떠는 거였더라’ ‘뭐든 받는 데만 익숙한 지독한 공주꽈(과)’ 등 강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카카오스토리’ 계정과 공인중개사 인터넷카페에 강씨가 올린 글에 거론된 ‘정 실장’이 자신을 지칭한다고 판단한 정씨는 강씨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1심은 ‘정 실장’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강씨가 쓴 글이 누구를 비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모욕죄가 인정되려면 글쓴이가 비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읽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특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1심 법원은 “강씨가 올린 글을 처음 봤을 때는 정씨에 대한 내용인지 잘 몰랐다”는 증인 진술 등을 근거로 “비방 글이 정씨를 특정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 강태훈)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강씨의 유죄를 인정하되, 벌금 3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17일 밝혔다. 가입자 2만8,000여명인 인터넷카페에 올린 강씨 글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본 반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은 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2심 법원은 카카오톡과 연동된 서비스인 카카오스토리는 전화번호가 저장된 사람의 계정에만 들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불특정 다수가 유입되는 인터넷카페와 달리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정 실장’이 정씨를 지목하는 것임을 지인들이 넉넉히 알아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가족과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 직원 및 A부동산 고객 상당수는 강씨의 전화번호를 저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정씨가 실장 직함을 달고 강씨와 단둘이 근무했던 점”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다만 “강씨의 카카오스토리 방문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피해자의 문제 제기 직후 게시물이 삭제됐으며, 강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