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농부 화가’ 김순복씨
딸의 색연필 선물 계기 그림 시작
3년 만에 서울시청서도 전시회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전남 해남군 현산면의 김순복(60·여)씨는 농부 화가다. 3만여평의 밭에 호박을 비롯해 배추·양파·고구마·대파 등을 재배하느라 1년 내내 한가할 틈이 없는 김씨는 뒤늦게 화가가 됐다.
어릴 적 그림에 소질이 있던 그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미술반에 들어갔지만 이런저런 비용 때문에 부모님이 내켜 하지 않았다. 이후 오빠와 동생을 가르치기 위해 공장에 취직한 바람에 그림이 그리고 싶었지만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결혼 후에는 5남매를 키우느라 화가에 대한 꿈을 접고 살았다.
그러던 김씨는 3년 전에야 그림을 그리는 행복을 다시 얻었다. ‘언젠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엄마의 말을 흘려 듣지 않은 딸에게서 72색 전문가용 색연필과 스케치북 선물을 받고 나서였다. 그는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어렸을 때는 상도 많이 받았다”며 “농촌의 풍경, 농사짓는 사람들, TV 속의 모습 등이 모두 그림의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김씨가 ‘농부 화가’로 데뷔한 것은 해남읍에 있는 행촌미술관 이승미 관장의 덕분이다. 김씨는 유기농산물 유통회사인 한살림 소속으로 소식지에 그림과 글을 연재했다. 올해는 그의 그림으로 한살림 달력이 제작됐다. 이 관장은 달력을 보고 김씨의 그림 전시회를 기획했고 지난 5월 행촌미술관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그림은 이 관장과의 인연으로 해남에 워크숍을 내려온 서울문화재단 직원들의 눈에 띄어 지난 7월에는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순 진짜 참기름처럼 고소한 그림’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1일부터 오는 10월 17일까지는 광주 동구 복합문화공간인 ‘김냇과’에서 광주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은 모두 120여 점이다. 그림에는 그가 살고 있는 마을과 농사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씨는 “아직 전시하거나 어디에 내걸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그림이다”며 “앞으로 그림과 가끔 쓴 시를 묶어 책으로 펴내는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일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여건이 되면 유화에도 도전하는 게 소망이다. 김씨는 “어릴 적 꿈을 늦게나마 이루게 돼서 행복하고 만족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해남=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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