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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철학, 아파도 웃는다(인터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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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철학, 아파도 웃는다(인터뷰③)

입력
2017.09.1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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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가 '여배우는 오늘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사 연두 제공
문소리가 '여배우는 오늘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사 연두 제공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포스터엔 배우 문소리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이 아닌 마라톤 트랙을 뛰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 손으로 들기엔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금색 토로피를 쥐고 힐까지 신고 열정적으로 달리고 있는 모습은 궁금증과 웃음을 한꺼번에 자아낸다. 우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예상치 못하게 힘든 길을 걸어야 함을 암시하는 이 모습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기 위해 끊임없이 발장구를 치는 백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문소리는 “처음엔 부산국제영화제 스틸을 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로듀서 친구가 제니퍼 로렌스가 드레스를 입고 넘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직접 계단에서 촬영을 하기로 하다가 어느 날, 내가 (교수로) 일하고 있는 단국대에 400미터 넘는 트랙이 눈에 띄었다. 사이즈도 크고 숲에 둘러싸여서 마음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 제목 ‘여배우는 오늘도’도 2막에서 가져왔으니까 2막에 나오는 장면처럼 뛰는 모습을 포스터로 담아 보기로 했다. 평소 단국대 운동장은 축구 동호회들 예약이 꽉 차 있는 편이라 우리는 한쪽 구석에서 찍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날 너무 더워서 개미 한 마리 없더라”라고 이야기 했다.

이어 “트로피는 단국대 체대에서 빌려온 보디빌더용이다. 우리끼리 뛰고 넘어지고 더워서 실신할 지경인데 너무 웃긴 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겠다고 한 거지?’라고 말하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벌이고 있는 게 재밌었다”라며 포스터 한 장에도 애정을 담아 만들었던 스토리를 공개했다.

힐을 신고 뛰기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문소리는 “원래 잘 뛰어다닌다. 학교 다닐 때도 항상 뛰어다녀서 내가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심폐기능도 좋다. 최근에도 심폐 나이가 21살로 나왔다. 우리 트레이너가 으스대더라”라고 너스레를 떤 뒤 말을 이어나가던 문소리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소리가 '여배우는 오늘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사 연두 제공
문소리가 '여배우는 오늘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사 연두 제공

그는 “산후우울증 양상들이 다들 다를 텐데 나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순산을 했기 때문에 48시간 정도는 행복했는데 호르몬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갑자기 손이 벌벌 떨리고 증세가 오더라. 산후조리원에 있을 땐 감염 때문에 밖에 나가면 안 되는데 나는 밤 12시에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그때 뛰면서 미친 사람들이 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는지 알겠더라. 답답하고 숨쉬기 어려운 지경이 올 때 속력을 내면 바람이 들어와서 숨을 잘 쉴 수 있는 듯한 느낌이 된다. 이제 미친 사람을 연기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금에 와서야 웃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이고 아픈 경험이었다. 하지만 문소리는 웃었다. 솔직하게 자신을 꺼내보였고 깔끔하게 털어놨다. 이는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영화에서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극중 문소리는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짠하게 드러내면서 뜻밖의 웃음을 선사한다. 문소리는 자신의 아픔을 객관화해서 해학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대단한 배우였다.

그는 “유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만큼 유머가 중요하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배우는 감정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다. 감정에 몰입하면 상처 받기도 쉽고, 그것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정신적으로도 약해진다. 실제의 고통의 크기와 상관없이 손가락에 가시만 박혀도 거기에 몰입하게 되면 죽을 것 같지 않나. 이런 게 비일비재한 직업인데 또 하지 않을 순 없다. 다만 상처받지는 않아야 하고 마음은 단단해져야 하니까 몰입할 땐 몰입하더라도 거리를 두고 전체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고 이것으로 인해 내 마음이 다치지는 않겠더라. 그래야 같이 웃을 수 있는 것 같다”라며 “어쩔 땐 한 없이 추락할 것 같고 내가 제일 우울한 것 같지만, 그걸 어떻게 견디느냐 위기관리 능력이 큰 능력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문소리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소리가 말하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공부의 방법과 과목은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뭐든 깊이 하면 다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기니까 여러 가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중요한 부분이고 그래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학교에도 있는 것 같다. 공부하면서 그 태도를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총장님이 이 말을 들으면 서운해 하시겠다. 하지만 괜찮다.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끝까지 문소리는 솔직하고 유쾌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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