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일, 온라인 혐오표현 규제 제정
기업 스스로 삭제케 유도
영국, 프랑스도 차별 발언은 강한 처벌
#2
한국은 명예훼손 등 조항으로
개별행위 일일이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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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이나 5ㆍ18민주화운동, 특정 성별 등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혐오 발언이 일베 같은 사이트에서 비롯해 1인 방송과 댓글 등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신속하게 차단하는 제재가 아직 정착하지 않았다. 반면 독일 등은 적극적인 사법처리로 혐오 표현(Hate Speech)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상태다.
독일 연방의회는 혐오 표현을 담은 게시물, 영상 등을 신속히 삭제하지 않으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에 최대 5,000만유로(약 650억)의 벌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처벌법안을 지난 6월 통과시켰다. 명백한 혐오 발언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 지 24시간이 지나도록 이를 삭제하지 않는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이런 태만이 반복될 경우 과징금적인 벌금을 부과해 인터넷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 자정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법규에 대해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 침해 아니냐는 시각으로 보기도 했지만 정작 독일에선 인터넷상의 혐오 발언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굳건하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2개월 간 혐오 표현 규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사용자들에게 인종 혐오, 증오를 부추기거나, ‘반 유대’를 연상시키는 등의 혐오 표현에 대해 신고를 받고도 페이스북은 그 중 46%, 트위터는 1%만 삭제한 것으로 조사되는 등 방치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지난해 11월 독일 정부가 혐오 발언을 적극 삭제, 차단하라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직접 경고했고, 수개월 간 모니터링을 지속하며 삭제 비율이 계속 같은 수준이면 법적 조치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뮌헨 검찰이 ‘인종혐오 게시물을 방치했다’며 한 독일 변호사가 페이스북을 고발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는 등 혐오 표현을 방치하는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나치 역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종 혐오 등에 대해 엄벌하는 나라이기에 인터넷 혐오 발언에 대해서도 이처럼 강력한 규제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지만, 영국 등 유럽 국가 다수도 혐오 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영국은 증오선동을 규제하는 공공질서법을 통해 인종적 증오 등을 선동하는 말과 행위를 처벌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1972년 인종차별방지법 제정에 더해 2004년 출판자유법 개정을 통해 성별,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성 장애를 이유로 명예훼손, 모욕, 차별, 증오선동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에 반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하는 미국에서는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홀로코스트 등을 경험한 유럽 국가의 혐오 규제는 적극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형법상 모욕죄 등을 근거로 인도인 교수에게 “더럽다” “냄새 난다” 등의 인종차별 발언을 한 30대 남성이 2009년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사례로 처음 혐오 발언을 사법적 심판대에 올리는 전례를 만들었지만, 혐오 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규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역시 평등권 침해나 차별적 행위를 금지할 뿐 혐오 표현 자체를 언급하진 않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차별, 비하에 대한 심의, 시정 조치를 하고는 있지만 해당 진행자가 경고나 방송종료 등 처분을 받고도 다른 계정을 열어 방송을 하기 일쑤라 실효성이 적다. 법제 마련에 앞서 ‘무엇이 혐오 발언이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부족한 상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김현아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영상 등에 협박, 혐오 발언이 있다고 해도 개별 행위를 하나하나 현행법상 명예훼손, 협박, 모욕 등의 조항으로 처벌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수사기관에서 그 표현의 수위가 협박 등 범죄 구성요건에는 못 미친다고 해석하면 처벌할 방법은 전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로 포장된 혐오가 결국에는 폭력이나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혐오 표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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