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하!생태!] 새들은 왜 바람을 피울까? 불륜 아닌 유전자 전쟁

입력
2017.09.16 04:40
0 0

번식 성공률 높이고

우월 유전자 전달 위해

일부다처제·난혼제 등 다양

2007년 강원 가평 남이섬에서 찌르레기가 새끼에게 줄 먹이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2007년 강원 가평 남이섬에서 찌르레기가 새끼에게 줄 먹이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자연세계에서는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스타가 되려고 노력하는 동물들의 각축이 벌어집니다. 수컷이나 암컷 모두 인기를 등에 업고, 여러 이성들과 교제를 하며 좋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많이 남기려 합니다. 동물이 세상에 태어나면 살기 위해 먹고 포식자를 피하는 등 ‘살고 보자’는 본능적인 행동을 하는데요. 살아남은 동물이 자신의 생존가(生存價), 그러니까 살아있는 이유를 확연히 드러내기 위해 서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동물에게 바람기는 혼외자식을 통해 좋은 유전자를 자손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암컷의 제한된 난자 극복하기

사람의 혼인제도는 대부분 1부1처제이지만 조류는 1부1처제 뿐 아니라 1부다처제, 1처다부제, 난혼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양한 혼인제도를 통하여 암수간의 협력은 주로 자식에 대하여 이해관계가 있을 때 이뤄지고 한 쪽 성에 의한 다른 쪽 성의 착취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연구자들은 동물의 교미(copulation)가 암컷과 수컷이 서로 자신의 유전자를 잘 전달하려고 조화를 이루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암수간에는 생식세포의 차이에 의해서 이해 관계가 달라지죠. 수컷의 정자는 작고 빠르게 생산되고 많은 난자를 수정시킬 수 있는 반면, 암컷의 난자는 크고 생산속도가 매우 느리며 그 수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컷은 다수의 암컷과 교미하면 할수록 많은 자식을 얻을 수 있지만, 암컷은 아무리 많은 수컷과 교미를 하더라도 자식 수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수의 번식성공률을 판단할 때, 수컷은 암컷보다 번식성공률이 항상 높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어느 한 성에 이익이 편중되는 불공평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암컷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신중하게 선택하거나 혼외교미를 통해서라도 이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수컷이 다수의 암컷과 교미를 해 그 암컷이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의 유전자가 전해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수컷의 정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암컷은 어떤 수컷과 교미하더라도 자신으로부터 태어난 자식은 반드시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는 거죠.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찌르레기

찌르레기는 일본에서 무리로 생활하는 텃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원이나 시골 마을에서 나무나 지붕 처마의 구멍에 둥지를 틀고 번식하는 여름철새입니다. 부리에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는 24㎝로, 참새의 2배 정도입니다. 전체적으로 회색과 검은 회색을 띠며, 뺨과 배, 허리의 색은 회백색입니다.

번식기는 4~7월이며, 한 번 번식을 할 때 4~7개의 알을 낳습니다. 보통 1년에 1회 번식을 하지만, 2회 번식하는 개체도 있습니다. 사람처럼 법적인 혼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암수 한쌍이 교미한 뒤 알을 함께 품고 새끼를 같이 키우는 주로 1부1처제로 번식하는데요. 그렇다 해도 일부는 1부다처제 또는 1처다부제로 번식하기도 합니다.

찌르레기의 세력권은 둥지와 그 주변의 아주 작은 면적에 불과합니다. 번식이 시작될 즈음, 수컷들은 다수의 둥지(세력권)를 확보하기 위하여 쫓고 쫓기는 치열한 싸움을 시작하며, 암컷도 남의 둥지에서 둥지재료나 알을 밖으로 꺼내버리고 그 둥지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암컷도 생긴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암컷 찌르레기가 다른 찌르레기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것을 종내탁란(種內托卵)이라고 합니다.

1992년 4월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 오이즈미 녹지에 조성된 찌르레기 인공둥지. 국립생태원 제공
1992년 4월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 오이즈미 녹지에 조성된 찌르레기 인공둥지. 국립생태원 제공

남의 둥지에 알 낳는 찌르레기

배우자 바꿔가며 스와핑도

“종족 번영” 찬사만 하기엔

집단 속이고 타 종족에 피해 줘

개체 아닌 이기주의 산물로 봐야

과거 일본 오사카 부 사카이시에 있는 오이즈미 녹지에서 1년간 찌르레기의 종내탁란에 대해서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해의 가을에 조사지역의 30년생 느티나무 지상 2~3m 높이에 3~5m간격으로 55개의 인공둥지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서식하는 찌르레기 성조 57마리를 포획해 크기와 무게를 측정하고, 날개 내측의 정맥에서 혈액을 채취한 뒤 다시 방사했습니다. 번식기에는 매일 둥지를 돌아보며 번식현황을 체크하고, 둥지를 드나드는 개체의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새끼가 둥지를 떠나기 전에도 번식에 성공한 8개 둥지의 새끼 42마리의 혈액도 채취해 분석해 봤습니다.

같은 둥지에서 발견된 찌르레기의 알. 다른 알에 비해 뾰족하고 긴 3번 알은 실제 유전자 확인 결과 다른 암컷에 의한 탁란으로 확인됐다. 국립생태원 제공
같은 둥지에서 발견된 찌르레기의 알. 다른 알에 비해 뾰족하고 긴 3번 알은 실제 유전자 확인 결과 다른 암컷에 의한 탁란으로 확인됐다. 국립생태원 제공

일반적으로 참새목에 속하는 조류는 하루에 1개의 알만 낳는데 어찌된 일인지 어떤 둥지에는 하루에 2개의 알이 들어있었습니다. 1개의 알은 둥지 소유자 암컷의 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1개의 알은 다른 암컷에 의한 탁란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 둥지 안의 알들을 함께 놓고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날 낳은 2개의 알 중에 하나는 모양이 다른 것보다 길거나 둥글고, 나머지 알 하나는 둥지 주인이 낳은 다른 알과 모양이 거의 비슷합니다. 조사지에 설치한 55개의 인공둥지 중, 번식에 이용한 둥지는 11개였습니다. 그 중, 5개 둥지에서 종내탁란이 확인됐습니다.

바람피는 찌르레기, ‘스와핑’도 한다는데

찌르레기를 관찰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습성은 둥지를 같이 쓰지 않는 다른 찌르레기와의 ‘혼외교미’입니다. 수컷이 여러 암컷을 만나기도 하고 암컷이 이웃 둥지의 수컷과 교미를 하기도 합니다. 연구 당시 채혈한 모든 개체의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는데 2개 둥지에서 혼외교미에 의한 자식이 발견됐습니다.

찌르레기 수컷 A는 두 마리의 암컷과 혼인을 했고 각각의 암컷은 자신의 둥지에서 자식을 키웠습니다. 이 중 한 암컷인 B의 둥지에서는 7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는데 A의 유전자와 B의 유전자를 동시에 받은 새끼는 3마리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4마리 중 2마리는 수컷 A가 이웃 둥지의 다른 암컷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자식이었고, 2마리는 암컷 B가 이웃 둥지수컷과의 혼외교미에 의해 태어난 자식이었습니다. 7마리의 새끼 찌르레기 중 4마리가 서로 배우자를 바꿔가며 교미한 ‘스와핑’에 의한 자식이었던 셈이죠. 자신의 번식확률을 최대로 높이고자 하는 암수의 의도된 속셈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연구 결과 찌르레기의 종내탁란은 암컷이 이웃의 수컷과 혼외교미를 한 후 다른 둥지에 탁란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은 결국 혼외교미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죠.

2009년 5월 경남 하동의 한 물가에서 찌르레기 무리가 먹이를 잡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2009년 5월 경남 하동의 한 물가에서 찌르레기 무리가 먹이를 잡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진화 앞당기는 이기적 행동 ‘혼외교미’

조류의 암컷은 다양한 형태로 매력적인 수컷을 구분합니다. 꿩의 암컷은 우아하고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고 개개비의 암컷은 큰 소리로 열심히 노래하는 수컷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휘파람새의 암컷은 다수의 수컷 세력권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수컷을 만나 교미를 한 뒤 자신의 둥지로 돌아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둥지 소유자의 수컷은 이웃 둥지의 수컷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는 거죠. 동물사회에서는 암컷이 선호하는 ‘킹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이것이 진화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찌르레기 사이의 힘의 경쟁에서 우위를 나타낸 수컷 80%는 1~3마리의 암컷과 교미하고 평균 7.75마리의 자식을 남깁니다. 그렇지 않은 수컷의 자식이 평균 6.67마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1마리 이상 더 낳는 셈이죠. 혼외교미가 확인된 암컷 3마리가 낳은 자식 수는 다른 암컷들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부부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혼외교미에 의해 다양하고 좋은 유전자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찌르레기의 암수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배우자의 형질을 후손에게 전달하고, 미래에 자신의 유전자 복제물을 가장 많이 남기려는 동물의 본능적 행동에 충실한 것입니다. 암컷이 여러 수컷을 만나 교미를 하는 것은 첫 번째 수컷과의 교미로 난자가 수정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암수가 서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잘 전달하려는 조화로운 현상이며,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새는 암수가 만나 교미하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키고,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등 다음세대에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종의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찬사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약한 새끼를 제물로 건강한 자식을 남기려는 맹금류, 상대를 속여서 암컷을 손에 넣으려는 알락딱새 수컷, 다른 암컷의 알을 둥지 밖으로 꺼내버리고 자신의 알로 대체하려는 찌르레기 암컷, 다른 수컷이 방어하고 있는 암컷을 강간하려는 원앙 수컷의 행동을 보면, 도저히 종족 유지만을 위한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조류의 다양한 혼인제도를 볼 때, 행동에 따라 그 집단(종족)이 이익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가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세대에 자기 자신의 좋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회를 늘리려는 거죠.

김창회 국립생태원 생태조사연구부 책임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