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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영어 교육의 첫 과제 ‘영어 울렁증’ 없애기

입력
2017.09.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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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울렁증 혹은 공포증(Foreign Language Anxiety)은 말 그대로 외국어를 접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두려움이다. 언어 교육에서 요즘 이 외국어 울렁증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외국어 중에서도 영어 울렁증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 영어 울렁증에서 100% 자유롭지는 않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평생 어느 정도 영어 열등감을 짐 지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영어 교육에 물질적, 시간적인 투자가 엄청난 우리는 영어에 대해 왜 그렇게 부담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언어학적으로 한국어가 영어와 매우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영어 울렁증을 갖게 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 울렁증의 주범은 필요이상으로 과중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문법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문법이 틀린 문장을 말하는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영어에 부정관사와 정관사 사용을 구분하는 것, ‘he’와 ‘she’ 대명사를 구분하는 것, 그리고,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 이러한 문법 범주와 구분이 없는 우리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매릴랜드 대학 사라 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 2세들에게도 이 구분이 영어 화자와 비슷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또한, 이 구분이 어려운 것은 한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런 범주가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대부분의 비 인구어(印歐語) 화자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한다.

세계 언어 지도 (World Atlas of Language tructures) 에 따르면, 세계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는 언어가 구분이 있는 언어보다 두 배 이상 많은데, 이는 다시 말해 인구어 화자가 아닌 이상 ‘he’와 ‘she’의 구분이 직관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즉, 우리가 목숨을 걸고 배우고, 외우고, 시험 보는 성ㆍ수(性ㆍ數) 일치와 같은 문법 사항이 우리뿐 아니라 비인구어 화자 모두에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쉽게 마스터하지 못한다고 해서, 영어를 배우는 대부분의 세계인들이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 일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문법 실수에 대해 별로 민감하지도 않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는 영어로 말할 때, 내용을 생각하기 보다 문법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영어 화자들은 우리의 문법 혹은 발음을 생각하기 보다 내용을 생각한다. 우리는 말하고 싶은 내용을 말하고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에 맞은 문장을 말하는 것이 목적일 때가 많다. 이것이 힘들면 말을 안 한다.

문법이란 사실,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문법 용어와 규칙은 꾸준한 읽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고, 규칙만 넣어주면 문법은 오히려 족쇄가 되어서 말을 다듬어 주는 게 아니라 입조차 열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세계화의 바람이 불 때마다 영어교육 바람도 같이 분다. 동시에 투자한 것에 비해 별 진전이 없는 스스로의 영어실력에 대해 답답한 마음도 든다. 다시금 기초부터 다지고자 영어 문법책을 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1단계 국민 영어 실력 배양의 모토는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합시다”가 아니라, “영문법을 좀 내려놓고, 영어 울렁증에서 해방됩시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법이 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 입을 떼기까지 망설이지 않는 용기이다. 문법을 통한 말 다듬기는 그 다음 일이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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