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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우리는 진짜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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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우리는 진짜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입력
2017.09.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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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자는, 반드시 사회적 약자가 있는 현장에 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사회역학자 김승섭(가운데 마이크 든 이)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 운동에 동참하는 이유다. 동아시아 제공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자는, 반드시 사회적 약자가 있는 현장에 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사회역학자 김승섭(가운데 마이크 든 이)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 운동에 동참하는 이유다. 동아시아 제공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발행ㆍ320쪽ㆍ1만8,000원

대학 때 언론학 수업을 기웃거려 본 이들이라면 아마 들어본 이야기일 겁니다. ‘마법의 탄환 이론’. 1930년대 말 미국의 한 방송사가 SF소설 ‘화성침공’을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했습니다. 실감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간중간에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드라마에요’라는 안내까지 곁들였는데, 화들짝 놀란 주민들이 대피 소동을 벌였다는 거지요.

미디어 효과가 마법의 탄환처럼 적중했다는 얘긴데, 나중에 제출된 사회심리학적 반론은 이겁니다. 당시 미국엔 1차 세계대전, 그리고 고조되는 2차 세계대전 위기를 앞두고 유럽에서 밀려나거나 도망쳐 나온 이민자들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어떠한 사회적 연결망도 지니지 못한, 불안하고 우울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고 별 일 아닌 자극에 노출되어도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는 얘깁니다.

한가지 얘기를 더하자면, 미국 정신과 의사 제임스 길리건은 20세기 100년간을 조사한 결과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 범죄가 늘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 범죄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교양인)란 책으로 내놨습니다. 다양한 통계자료를 동원한 아주 흥미로운 연구입니다.

벌써 혀 차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로 치자면 “문빠냐?”라는 소리가 나올 법한 얘기지요. 그렇게 공화당이 싫으냐, 과학으로 위장한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 법 합니다. 저자는 이를 차분히 반박해나가면서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못난 건 그저 네 탓이라 주입하면서, ‘일벌백계’니 ‘깨진 유리창 이론’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면서 엄벌주의를 외쳐대는 공화당 정부의 정책이 실제로는 오히려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사람들을 자꾸만 내몰아대서 불안하고 기댈 곳 없게 만들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 김승섭. 사회역학자인 그는 "비가 쏟아질 때는 함께 비를 맞자"라고 제안한다. 동아시아 제공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 김승섭. 사회역학자인 그는 "비가 쏟아질 때는 함께 비를 맞자"라고 제안한다. 동아시아 제공

자, 이쯤이면 우리도 이런 책을 가질 때가 됐습니다.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권이고, 필요할 때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사람 비중이 꼴찌이며, 일과 삶의 균형도 최악이라는 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표를 인용 보도한 기사들이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만년 단일민족’이라서 아주 단란한 나라라고 반복 주입 교육을 받지만, 사실 우리는 유럽 각국 난민이 밀려들던 1930년대 미국처럼 사회적 연결망이 단절된 각자도생 이민자들로서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만 터졌다면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원흉 하나 만들어 작살내는 마녀사냥이 잦은 것은, 사실 우리가 너무 불안하고 기댈 곳 없어서 그런 것인 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 주목한 ‘사회 역학자’입니다. 사회 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특징, 가족력 추적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학교, 직장, 지역사회 같은 공동체의 특성에서 찾는 연구”를 말합니다. 모든 질병은 사회적입니다. 파괴된 공동체, 그리고 가난, 차별, 불평등, 학대 등은 우리 몸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깁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 역학이란 프리즘으로 들춰내는 우리 사회의 시리고 아픈 단면들입니다.

그래서 저자가 뛰어든 현장은 이렇습니다.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 문제, 공기업 민영화 문제, 동성애ㆍ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와 왕따ㆍ차별 문제 등등. 그리고 세월호 참사 유족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문제는 빠질 수 없겠지요. ‘사회’를 중시하기에 저자는 흔히 쓰이는 ‘트라우마’라는 용어도 조심스러워합니다. 자칫 심리적 안정과 치료만으로도 해결 가능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섭니다. 사회가 병을 낳았다면, 그 병이 치유되는 것 역시 전 사회적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폭염, 낙태, 해고, 작업장 안전, 동성애, 에이즈, 소외 등을 키워드로 한 국내외의 다양한 실험결과와 사례들을 쉽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쭉 읽어만 나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할 가장 중요한 건 일종의 ‘의지’ 혹은 ‘결단’입니다. 이 책은 그저 국가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고통 없이 털이나 뽑혀줄 ‘닭들’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는 ‘개ㆍ돼지’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을 어떻게든 보듬으려 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 동시에 호소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의지, 혹은 결단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써뒀습니다.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라고. 제목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지만, 사실 그게 길이 될지 안 될지, 된다 해도 꽤 괜찮은 길이 될지 그저 그런 길이 될지는 이 의지와 결단의 수준과 성격에 달린 문제일 겁니다. 정의로운 분노보다 연약하겠지만, 정의로운 분노만큼이나 손쉽지는 않을 겁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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