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해안에 검은 재앙을 몰고 온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사고 직후 바다와 해안은 시커먼 기름범벅이 됐고, 주민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123만 자원봉사자의 헌신적 노력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사투 덕에 서해는 이제 청정 해역으로 되돌아왔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2,547ℓ가 바다로 쏟아지면서 태안 앞바다를 중심으로 서해안에는 순식간에 ‘검은 재앙’이 들이닥쳤다. 새카만 파도가 백사장과 갯벌, 각종 해산물 양식장으로 끊임없이 밀려들며 ‘죽음의 그림자’를 몰고 왔다. 어업과 요식업, 숙박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은 길거리에서 ‘생계대책’을 호소했고, 일부 주민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직후 해양 생태계 복원에 수 십 년은 걸릴 것이란 비관적 예측을 내놨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바다와 해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종 해양 생물의 보고로 돌아왔다.
새카만 기름을 뒤집어쓴 외기러기가 비명을 지르던 태안 앞바다는 지난해 국제환경단체로부터 옛 청정 해역으로 복원됐음을 인정받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기름유출 사고 이후 보호지역 등급을 ‘카테고리 5(경관보호지역)’로 분류했던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카테고리2(국립공원)’로 변경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유류오염연구센터의 조사 결과 2008년 심각 상태가 70%에 이르던 잔존 유징은 2014년부터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해저 생물 관찰 지표인 저수 동물 출현 종수와 밀도도 꾸준히 늘어 2012년부터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로 돌아온 것은 꽃게와 대하, 바지락 등 충남의 대표 수산물 수확에 여념이 없는 어민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하철을 맞아 안면읍 백사장항에선 하루 평균 40~50척의 어선이 대하잡이에 나서 하루 1~3톤을 잡고 있다. 속이 꽉 찬 꽃게잡이도 한창이다. 지난 4월 소원면 파도리 일대 양식장에서 400여명의 어촌계원이 하루 10톤의 바지락을 수확하기도 했다. 관광객도 그 동안 1,000만명이 다녀가고, 올해도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 이후 조성한 여러 방제길은 트레킹 코스로 주목 받는 것도 한몫 한 것으로 태안군은 보고 있다.
10년 만에 태안 앞바다가 해양생명의 보고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고 직후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태계 건강성 회복을 위해 관계당국과 환경단체 등이 한 몸이 돼 보전ㆍ관리 노력을 한 것도 ‘서해의 기적’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양수산부와 충남도는 기름유출 사고 1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함께 살린 바다, 희망으로 돌아오다’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연다. 그 동안의 극복과정을 돌아보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한 자리다.
김용명 선진어촌계장은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 바다와 양식장, 해안을 시커먼 기름이 뒤덮어서 살 길이 막막했다”며 “해산물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긴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양식도, 어업활동도 할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박덕규 서해안유류피해연합회장은 “아직은 주민 보상이 다소 부족하다고 대부분 생각하고 있다”며 “삼성의 유류피해 발전기금 배분도 불합리한 만큼 이제부터라도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배분되도록 정부와 충남도, 관계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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