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 체포영장 이유로 정기국회 거부
'무력감 빠진 107명 오합지졸 몽니' 비판
정풍ㆍ개혁 움직임도 없어 "부끄러울 뿐"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지 말라고 했다. 장사를 하든 싸움을 하든 모든 일에는 비슷한 가치와 명분이 경쟁하는 '비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일 게다. 목적 실현과 수단 사이에 합리적 비례관계가 유지돼야 한다는 이 원칙은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이 원칙을 벗어나 비용과 힘을 과도하게 낭비하면 제풀에 지치거나 이겨도 상처만 남기 십상이다.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게임의 틀과 공정성이 무너지고 훼손되면 관객의 외면은 물론 조롱을 피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지난주 자유한국당이 김장겸 MBC 사장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이유로 정기국회를 전면 보이콧하고 장외로 뛰쳐나간 것은 '닭칼-소칼의 우'를 범한 전형적 자해 사례다. 한국당은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로 발부된 김 사장 체포영장이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파괴한 '한국판 문화대혁명'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했으나 본인들조차 쑥스러웠을 것이다. 김 사장의 행적이나 혐의, 영장청구 및 발부의 적절성 논란에 새삼 끼어들거나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이명박 정부 초기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혐의에 대한 체포영장 논란이 벌어졌을 때 홍준표 대표가 '당연한 절차'라고 옹호했던 내로남불을 시비하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야당 100일을 갓 넘긴 한국당이 너무 쉽게 '야당질'을 한다는 것이다. 표적을 찾지 못해서, 또 찾아도 제대로 이끌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으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주장처럼 김 사장 체포영장에 담긴 정치적 저의가 명백하다고 해도 정기국회 거부와 한 저울에 올려 맞대응할 일은 아니다. 새해 예산을 심의하고 국정을 감사하며 관련 입법활동을 전개하는 정기국회는 국회와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대의민주주의를 압축적으로 대변하는 무대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란의 와중에서 제기된 경영진 거취 문제와 맞바꿀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노골적 부당노동행위에서 비롯된 MBC 분규는 기본적으로 노사문제다. 정치권의 섣부른 개입이 문제를 변질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당이 무리수를 둔 것은 홍 대표의 초조함과 소속 의원들의 뿌리깊은 무력감과 난맥상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 단서는 홍 대표가 7월 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나눈 얘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홍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이 "어려울 때 야당 대표를 맡아 고생이 많겠다"고 위로하자 "여당은 무한 책임이 있어 힘들지만 야당은 할 일이 없다. 야당 대표 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이것이 '보수우파 재건의 대장정'을 선언하며' 육참골단의 혁신'을 약속한 홍 대표의 인식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또 어떤가. 현재 소속의원은 107명으로 집권당인 민주당의 121명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선수로 보면 초선 44명, 재선 30명, 3선 16명, 4선 12명, 5선 4명, 8선 1명으로 총 선수는 228선이다. 선수 분포나 총 선수도 민주당(252선)과 별 차이가 없다. 이들은 지난 6월 초 대선 패배 책임을 따지는 연찬회에서 "보수의 가치를 발전적으로 계승해 대한민국 100년을 이끌어 갈 미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또 정기국회를 앞둔 지난달 말 열린 연찬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신적폐'로 규정, 강도 높은 견제를 예고하고 "민생안정과 경제성장을 독려하는 민생정부 구현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대했다. 당의 정체성이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물론 그 흔한 개혁 모임이나 정풍 운동 하나 만들지 못한 보신주의 ‘웰빙 야당’을 내려놓는가 했다. 하지만 이들은 난데없이 '가열찬 투쟁'을 독려하는 대표와 함께 정기국회를 내동댕이친 채 본회의장과 검찰청사로, 또 청와대로 몰려다니며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했을 뿐이다. 새 정부 출범 4개월이 넘도록 당 지지도가 집권당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고작 하는 짓이 어설픈 장외투쟁이었다. 누군가 죽비로 내려칠 법하다. "그 입으로 100년 정당 운운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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