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싫다고 외쳐야 하는 것인가. 북핵 문제로 한반도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할 수도 있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대북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마저...”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보수진영에서 안보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과 연대하고 추미애에 반대”해야 한다는 ‘연문반추’ 주장이 나올 정도인지, 답답하다.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1987년 민주화로 해결하지 못한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며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 있다. ‘여소야대’라는 분점정부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국민의 70% 이상이 지지하는 정책만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수도 있다. 비판자가 아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세력으로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도 이해된다.
하지만 다시 공산당이 싫다고 외쳐야 하는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분단 이후 한반도에서 평화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쟁 상황이 지속되면서 독재정권은 40년 넘게 반공·반북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했다. 반공·반북이 민주주의와 인권 보다 우선되는 모든 것이었다. 그 진위를 알 수 없지만 반공·반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철저하게 국민을 세뇌시켰던지 8살 어린이까지도 목숨을 걸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
그런데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또다시 반공주의의 시대로 되돌아가려고 하는가. 지난 대선을 기억해보라. 문재인 후보는 선거 프레임을 안보 문제로 전환하려는 보수정당에 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당당히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우리 스스로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염원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계승하는 것인가.
더욱이 한반도 평화문제는 단순한 안보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했던 이유도 복지국가가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도 분단을 배제하고는 상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수 없었으며,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조차 빨갱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할 조직과 정당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기울어진 이념의 운동장에서 경기를 했다.
상대를 무릎 꿇리는 일은 평화가 아니다. 두려워 무릎 꿇은 상대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할 리 없기 때문이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복지국가 실현은 불가능한 꿈이 되어 버린다. 물리력에 의해 반공ㆍ반북주의가 승리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고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주체가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확보될 리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위협하면 할수록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힘은 약화되고 그들이 활동할 정치적 공간은 줄어든다. 안보를 위해 복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바른정당을 보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공고히 하는 길이며,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공고화하는 길이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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