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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지막 광복군, 김준엽

입력
2017.09.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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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光復軍) 사령부가 창설된 날이다. 1940년 중국 중경(重慶)에서 김구(金九) 주석이 조국광복을 위한 무력투쟁의 고고한 횃불을 치켜든 그날이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후 20여 년 만의 일이다. ‘백범일지’의 감개무량한 기록이다. 미주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금액 중 비상금으로 저축한 돈으로 중경의 외교사절을 초대하여 광복군 성립 전례식을 화려하고 성대히 거행한다. 중국군 장성들, 체코·터키·프랑스 대사들도 참석하여 중국에서 열린 외국인 연회로서는 굴지의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참석했던 연합국 기자들도 광복군 창설소식을 각국에 널리 보도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임시정부는 조국광복의 앞길을 밝히는 북극성이었다. 그 중심에 청년 김준엽(金俊燁)이 있다. 일본 유학생이던 그는 학병(學兵)으로 중국 땅에 내몰린다. 고향인 압록강가에서 독립군의 거친 말발굽 소리의 신화와 함께 성장했는데, 아무리 세상이 하수상해도 제국주의 일본 병정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학병 탈출 제1호로 중경의 임시정부를 찾아 중국대륙 절반을 관통하는 6,000리 장정(長征) 길에 나선다. 장준하 동지와 돌베개를 같이 베며 후손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천신만고의 장정 끝에 김구 주석의 품에 안긴다. 정의와 진리와 선(善)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역사의 신(神)’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국이 광복되자 광복군은 개선장군처럼 서울에 입성해도 좋았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의 투쟁에 대한 보상보다도 다시는 이민족(異民族)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부국강병의 새나라 건설에 매진해야 할 자랑스러운 원동력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 김준엽은 입신양명의 유혹보다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간다. 조국광복에 헌신한 선열들의 기록을 청사(靑史)에 남겨야 역사의 수레바퀴가 올곧게 전진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얄팍한 권력의 부나비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성채(城砦)를 쌓았다. 아는 이만 아는, 마음에 아로 새겨진 정의의 광장인지도 모른다.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 누구인가. 조국에 남았던 가족들은 일제 점령군과 일신의 영화를 위해 아부하는 친일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던가. 광복된 조국이 그분들에게 대접한 것은 무엇인지? 압축성장 잔치와 권력욕과 사욕을 채우려 하이에나처럼 이전투구하던 그들은 광복(光復)의 열사(烈士)들을 애써 잊은 채 그렇게 살았다.

이제 문재인 정부에서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國軍)의 역사에 기록하게 하고,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들 3대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밝힌 데 진력하신 김준엽 선생님이 하늘에서 흐뭇해하실 것 같다.

엊그제 김준엽 고려대 총장시절 학생들이었던 50대 중반의 제자들이 총장님 탄생 백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모임에서 ‘김준엽 현대사-장정(長征)’ 5권을 다시 읽었다. 전두환 군사권력이 강요한 총장사퇴 반대데모만으로도 총장님을 지키지 못해 미안했다고 했지만, 이제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된 그들의 참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믿음직스럽고 무척 고마웠다. 거인(巨人)의 한 자락이라도 올바르게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출판장이가 되지 않았으면 30년 동안 어른을 직접 모실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서러움과 환희를 안고 깊은 잠에 드신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우리 선생님은 광복된 조국이 통일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한국혼(韓國魂)의 거대한 학(鶴)이 되어 지금도 고향인 압록강변 위를 날고 계실지도 모른다.

조상호 나남출판ㆍ나남수목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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