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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밀턴 허쉬(9월 13일)

입력
2017.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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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허쉬'의 창업자이자 미국 펜실베이니자 허쉬타운의 설립자 밀턴 허쉬.
초콜릿 '허쉬'의 창업자이자 미국 펜실베이니자 허쉬타운의 설립자 밀턴 허쉬.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허쉬(Hershey)는 초콜릿 마을이다. 37.3㎢ 면적에 ‘허쉬’라는 이름이 붙은 공원과 정원과 체육관과 병원이 있고, 포브스에 소개될 만큼 멋지고 로맨틱하다는 호텔과 로지, 어드벤처 월드와 골프 리조트,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허쉬 초콜릿 공장이 있다. 거기서 1만2,000여 명의 주민이 어떻게든 허쉬와 인연을 맺고 산다. 허쉬 타운의 설립자이자 밀크초콜릿의 대명사 ‘허쉬’의 창업자가 밀턴 허쉬(Milton S. Hershey, 1857~1945)다.

스위스와 독일계 이주민 후손인 허쉬는 초등학교를 4년 만에 중퇴하고 작은 마을 신문사 견습 인쇄공이 됐다. 14세 소년은 그 일이 영 따분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고의인지 실수인지, 모자를 기계에 빠뜨리는 바람에 해고당했다. 다시 얻은 직장이 랭카스터의 한 사탕가게였다. 그 또래 아이들처럼, 사탕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그는 그 가게에서 만 4년을 보내며 기술을 익혔고, 곧장 자기 사탕가게를 차렸다가 이내 콜로라도 주 덴버로 가서 밀크카라멜 제조기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1883년 고향 랭카스터로 돌아와 ‘랭카스터 카라멜 공장’을 차렸다. 그는 10년도 안 돼 직원 1,300명을 둔 제과회사 사장이 됐다.

1900년 그는 회사를 100만 달러에 매각, 랭카스트 북부의 농장을 사서 초콜릿 실험을 시작했다. 몇 년 전 시카고 월드콜롬비안엑스포(1893년)에서 본 초콜릿 기계와 초콜릿 맛을 잊지 못해서였다. 장인들이 만들던 유럽의 귀족 초콜릿과 다른, 표준화한 공법의 대중적 초콜릿을 만들겠다는 집념이 그에게 있었고, 또 인근 낙농가들이 공급하는 신선한 우유가 있었다. 그 해 말 허쉬 초코바가 탄생했다. 1903년 공장을 지었고, 07년 허쉬 키세스(kisses)를, 08년 허쉬 아몬드 초코바를 출시했다.

그는 뉴욕의 한 사탕가게에서 만난 캐서린 스위니(Catherine Sweeney, 1872~1915)와 1898년 결혼했다. 자녀가 없었던 부부는 엄청난 재산을 공장 직원과 자녀들, 지역 주민, 마을 복지에 쏟아 부었다. 그가 설립한 신탁과 재단이 부부가 떠난 지금도 허쉬타운의 각급 학교를 포함한 모든 시설을 실질적으로 운영한다. 9월 13일은 허쉬타운의 공기가 가장 달콤해진다는, 밀턴 허쉬의 생일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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